‘처녀귀신’을 찾습니다
‘처녀귀신’을 찾습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7.10 10:59
  • 호수 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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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새 수목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가 방영 시작과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밤을 걷는 선비는 살아 있는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를 의미한다. 한국 드라마에 흡혈귀가 나온 것은 처음은 아니다. 최근에 종영된 KBS의 ‘블러드’도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흡혈귀 의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밤을 걷는 선비는 흔한 소재가 된 흡혈귀를 조선시대로 끌고 와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공포의 대상은 흡혈귀와 좀비(움직이는 시체)다.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웬만한 국가에서는 흡혈귀와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정도이다. 대중들은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살 떨리는 공포를 체험하며 재미를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아쉬운 존재가 있다. 고대소설인 ‘장화홍련전’에도 등장하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처녀귀신’이다.
1990년대만 해도 매해 여름마다 통과의례를 치르듯이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상영됐다. KBS ‘전설의 고향’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귀신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건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었다. 기자도 열대야로 뒤척이던 그 시절 TV를 통해 처녀귀신을 보고 나면 온몸이 서늘해져 잠을 청하곤 했다. 1998년에 처음 개봉해 이후 4편이 더 만들어진 ‘여고괴담’도 처녀귀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역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흉측하게 생긴 좀비와 입에 붉은 피를 묻힌 하얀 피부의 흡혈귀에 밀려 처녀귀신은 서서히 잊혀져갔다. ‘자유로 귀신’ 등 도시괴담으로 유명해지며 잠시 부활하는 듯 했으나 이마저도 한때에 불과했다.
처녀귀신이 흡혈귀와 좀비보다 나은 문화 콘텐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처녀귀신은 다른 두려움의 대상과 달리 ‘격’이 있다.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서 공포심을 조성하는 다른 귀신들과 달리 처녀귀신은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로 상대를 제압한다. 또한 자신의 원한을 풀어주면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원래 없었던 존재인 것처럼 사라진다.
처녀귀신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자극적인 공포는 줄 수 없지만 이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세련된 두려움을 줄 수 있다. 시들해졌던 공룡 이야기가 '쥬라기월드'로 부활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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