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채로 풍선 날리기 했을 뿐인데… 마음이 가뿐”
“파리채로 풍선 날리기 했을 뿐인데… 마음이 가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12.04 14:30
  • 호수 4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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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심리운동’ 자존감 상승 효과… 경로당서 인기
▲ 최근 홀몸노인들의 우울증 치료에 놀이와 운동을 결합한 심리운동이 활용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거울놀이를 하는 노인의 모습.

간단한 동작의 놀이 함께 하면서 병든마음 치료하는 프로그램
장애 아동 위해 고안… 경쟁 아닌 협력 통해 긍정적인 마음 향상

지난 11월 25일, 충남 논산시 별곡면 양산1리 경로당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70~80대 어르신 20여명이 파리채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풍선을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무릎이 아픈지 잠시 자리에 주저 앉은 어르신도 있었지만 이내 일어나서 다시 파리채를 휘둘렀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방안을 움직이며 기이한 행동을 하는 어르신들은 논산시에서 홀몸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심리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한 모(여‧76) 어르신은 “간단한 동작으로 이뤄진 놀이를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심리운동이 혼자 사는 노인들의 자존감 상승에 큰 효과를 나타내면서 자살예방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심리운동이란 놀이나 간단한 움직임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이렇게 생긴 자신감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치료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술래잡기, 공 굴리기 등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로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운동은 1955년 독일 교육심리학자 조니 키파드에 의해 탄생했다. 처음에는 장애 아동의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해 고안됐다. 당시엔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경쟁을 통한 운동법을 중시했다. 하지만 키파드는 이런 교육법이 이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보안하기 위해 놀이 요소를 가미한 심리운동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는 2000년대 전후로 장애인복지관을 통해 먼저 소개됐고 현재는 청소년과 노인 등을 대상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석대 대학원에서 심리운동전공을 개설·운영하며 체계적인 심리운동전문가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청소년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노인 대상 심리운동은 약해진 신체 기능 향상과 이로 인해 부정적으로 변한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노화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떨어진 일생생활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다.
우석대 김윤태 교수는 “활동성이 떨어지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우울감이 높아진 노인들이 심리운동을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충남 논산시는 이런 노인 심리운동의 장점을 활용해 ‘노인심리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프로그램은 노인 자살예방 차원에서 지난 4월부터 12월 15일까지 총 20회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교통이 불편한 벌곡면의 조령리와 양산1리마을의 홀몸노인 20여명을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 교육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프로그램은 노인들이 거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간단한 동작으로 이뤄진 놀이들로 구성했다. 지도사가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도구를 응용한 놀이를 만들어 방문한 후 그날의 상황에 맞게 변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폐비닐로 고무공을 튕기는 일을 하다가 어르신들이 조금 지루해 하거나 힘겨워하면 지도사는 숟가락이나 주걱으로 도구를 바꿔 다른 놀이로 바꾼다. 기본적인 프로그램은 있지만 상황에 맞게 어르신들이 친숙한 도구로 바꿔 거부감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앞서 소개한 ‘파리채로 풍선 날리기’를 비롯해 ‘이름표 달고 이름 불러주기’ ‘신문지 찢어 옷 만들기’ ‘공 굴리기’ ‘보자기에 싸인 물건 맞추기’ 등 집에서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들이 어르신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초창기만 해도 아프다는 이유로 주저하던 노인들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간단한 동작에 흥미를 보였고 점차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1월 프로그램이 완료된 조령리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선 100%에 가까운 만족도가 나오기도 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내년에는 인지기능평가, 우울검사 및 기초건강측정 등을 병행해 심리운동의 효과를 높여 홀몸노인들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래놀이를 심리운동에 결합해 운영하는 곳도 있다. 경기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은 관내 장애를 가진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매주 한 차례 노인심리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몸이 조금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비석치기, 술래잡기, 산가지 놀이 등을 하며 매주 조금씩 웅크린 마음을 풀어가고 있다. 참여 노인 대부분이 평소 장애치료를 위한 재활운동에 매달리느라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심리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가장 크게 바뀐 건 서로 인사를 반갑게 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복지관 복도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 웃으며 덕담을 나누게 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염귀순(여‧66) 씨는 “매주 참여하면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를 통해 묵혀뒀던 나쁜 감정을 몰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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