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제기동역 근처는 노인들의 새 해방구
서울 제기동역 근처는 노인들의 새 해방구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12.18 14:39
  • 호수 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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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장 시작되는 지점… 오후마다 고령자들 몰려
▲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종로3가역·제기동역으로 외로운 어르신들이 만남을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은 종로의 한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녀 어르신.

콜라텍서 ‘즉석만남’ 활발… 꽃뱀·불륜 위험도 도사려
종로3가역, 소주방·식당·잔술집 등선 노년 끼리 미팅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서울의 지하철역 일대가 이성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제기동역 주변은 매일 수많은 고령자들이 다녀가는 곳. 인근에 형성된 저렴한 상권과 유흥의 장이 발길을 끈다. 하지만 여가문화 향유의 목적이 아닌 이성과의 ‘만남’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도 있다.
지난 12월 16일 오후 3시 30분, 탑골공원과 종묘광장 쪽으로 어르신들이 모였다. 소주방, 식당, 잔술집 등이 주요 집결지였다. 특이한 점은 일행 없이 혼자 온 경우가 많다는 것. 한 식당에 자리한 남성 어르신은 주문도 하지 않은 채 입구와 휴대전화만 번갈아 바라봤다.
“홍 여사, 이제 오셨어?”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오자 한 남성 어르신이 반갑게 맞이한다. 쌀쌀한 날씨에 손이 시리진 않았는지, 밥은 먹었는지 등을 물었다. 여성 어르신은 “걱정 마시오”라며 남성 어르신의 등을 토닥였다.
이윽고, 3개의 테이블에 남녀가 짝을 지어 앉았다. 한 테이블에선 주선자가 여성 어르신에게 남성 어르신을 소개하는 듯 했다.
15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다는 사장 A씨(익명 요구)에 따르면 이 같은 풍경은 종로에선 낯선 모습이 아니다.
A씨는 “외로울 때 술 한 잔 하는 친구사이가 대부분”이라며 “3~4시 경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5~6시쯤 헤어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엔 이런 자리가 ‘박카스 아줌마’들의 영업의 장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최근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며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그럼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없을까.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B어르신(77·여)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 아는 언니가 이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따라 천안으로 내려간다고 하더라고. 그 언니 집은 일산인데 미련은 없데. 둘 다 혼자 10년 넘게 살아 외로웠다는데 잘됐어.”
이런 경우가 많은지 묻자 B어르신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친한 사이라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긴 꺼려해 깊은 사이가 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 뿐 아니라 탑골공원 주위 잔술집에선 간혹 ‘부킹’(즉석만남)도 이뤄진다. 생면부지의 이성과 술 한 잔으로 친구가 된다. 이는 지하철로 10분 거리인 제기동에서 더욱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제기동역 2번 출구엔 매일 오후마다 어마어마한 노년의 인파가 몰린다. 약령시장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그 길이 경동시장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시장보단 콜라텍이 제기동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콜라텍은 경동시장 맞은편 건물 지하 1층에 자리했다. 기자가 콜라텍을 방문한 이날엔 300여명의 어르신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곳에선 즉석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만남을 주선하는 도우미까지 존재한다.
오후 5시, 폐점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르신들은 댄스홀 옆 찻집을 향했다.
일행으로 보이는 무리 사이엔 즉석만남을 갖는 남녀 커플이 보였다. 흔히 아는 클럽에서의 즉석만남과 달리 조용한 분위기였다. 한 커플은 말없이 차만 홀짝이다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 짓길 반복했다.
콜라텍 관계자는 “종로에 젊은이들이 많아지자 그곳의 어르신들이 제기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종로와 마찬가지로 즉석만남에 나서는 어르신들은 정서적인 교감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종로와 달리 콜라텍은 꽃뱀, 불륜 등 범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관계자는 “즉석만남을 통해 접근, 금품을 훔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해 아예 입구에 물품보관함을 두고 귀중품을 보관하도록 하고, 콜라텍 내부에 운영 중인 포장마차에선 자체 감시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영등포의 콜라텍도 다닌다는 C씨(69·여)는 “복지관이나 댄스동호회 등을 통해 만나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노년들의 건전한 만남 자체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C씨는 “남녀가 만나 춤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잘못된 일이냐”며 “일부의 행태 때문에 우리처럼 건전한 만남을 즐기는 이들까지 색안경을 끼고 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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