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침대 옆 콜벨 누르니 간호사 달려와 용변 처리해줘
환자가 침대 옆 콜벨 누르니 간호사 달려와 용변 처리해줘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5.12.28 09:25
  • 호수 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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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현장 르포

지난달 패혈증으로 서울의료원에 입원한 김주남 어르신(84)에게는 간병인이 따로 없다. 병동 내에서 간호와 간병 등 포괄간호서비스가 이뤄지는 포괄간호병동에 머물고 있어서다. 하지만 김 어르신은 “불안하기는커녕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온 집안에 비상이 걸린다. 게다가 수술이라도 받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 한다. 키 낮은 보호자용 침대에 몸을 의탁해 새우잠으로 밤을 지새우는 건 다반사이다. 그렇다고 간병인을 쓰기엔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한 달 간병비만 180∼20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 서울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은 간병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24시간 간병까지 도맡아… 환자들 “친딸보다 낫다” 만족
식사 후에는 칫솔질 해주고… 욕창 안 생기게 피부상태까지 신경
격무 시달리는 간호사 처우는 미흡… 체력소모 커 이직이 잦은 게 현실

포괄간호서비스는 보건복지부가 이 같은 사적 간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부담과 입원서비스 질 저하 우려 등 간병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서비스이다.
현재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은 2014년 28곳에서 올해 102곳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전년에 비해 3.6배로 높아진 수치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간병인과 환자 가족이 병실에서 머무는 한국적 병간호 문화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에 따라 병실에 보호자 상주나 병문안을 하지 못하게 하고 별도 면회실을 운영해 감염 차단 효과도 있는 포괄간호서비스가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서울의료원은 지난 2013년부터 국내 최초로 간병인이나 보호자 대신 간호사 등 전문 간호 인력이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포괄간호서비스를 실시해 왔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병동, 호스피스병동, 재활의학과병동, 1인 병실 등을 제외한 모든 병실이 포괄간호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을 현장 르포로 소개한다.

#면회 시간 정해 보호자 간병 권장
기자가 12월 18일 취재를 위해 서울의료원 포괄간호병동을 방문했을 때에는 일부 환자들 곁에만 보호자가 있었고 과일, 음료수 등을 손에 든 문병객이 보이지 않았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다보니 옷가지, 세안용품 등 각종 생활용품도 볼 수 없었다. 병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알고 보니 서울의료원 포괄간호병동은 가족들의 간병을 ‘면회’의 개념으로 바꿔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면회를 피하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이날 만난 한 보호자는 “일을 다니다 보니 아버지를 돌보러 병원에만 하루 종일 붙어있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아버지가 한밤중에도 콜벨(간호사를 부르는 초인종)을 누르면 간호사들이 빠르게 달려와서 적정하게 대처해주기 때문에 항상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2주 전 5시간 넘게 척추디스크 수술을 받은 하주섭(73) 어르신은 수술 뒤 이틀 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서도 불편하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불편한 부분들을 다 해결해 줬기 때문이란다.
하 어르신은 “간호사가 의료서비스와 간병을 같이 해주다보니 더 안전한 것 같다”며 “아무래도 간병인보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더 전문적이지 않겠냐”고 고마워했다.

#간호 인력, 일반 병동 보다 2배 많아
24시간 밀착 서비스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 인력이 일반 병동 보다 2배나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병동의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12~14명이지만 포괄간호병동은 7~8명 수준이다. 1개의 포괄간호병동 당 간호사․간호조무사 6~7명과 병원보조원 1명이 조를 이뤄 3교대로 간병업무를 담당한다.
서비스 범위 역시 의료적 처치는 기본이고 용변 처리나 식사, 가래 제거, 칫솔질까지 돕는다. 기자가 이날 방문한 포괄간호병동에는 간호사 2명이 점심식사를 막 끝낸 노인 환자의 양치질을 도와주고 있었다. 또 다른 병실에서는 간호사 2명이 매일 누워 지내는 90대 남성 노인 환자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일반 병동에서는 간병인들이 하는 일이다.
이같이 간병일까지 도맡아 준데다 친절하고 비용 부담도 없으니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이보다 더 든든한 언덕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는 환자들의 회복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환자를 얼마나 세심하게 돌보느냐를 보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욕창 발생 여부인데, 서울의료원 포괄간호병동에서는 먼 나라 일이다.
김남희 수간호사는 “포괄간호병동을 운영하고 나서 우리 병동에 욕창이 생긴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바로 전문 간호 인력이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똑같이 환자의 용변을 처리해도 간병인은 위생에만 신경을 쓴다면 간호사는 피부 상태나 몸의 변화까지 살피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사고 예방 위해 콜벨‧볼록거울 설치
인력이 많이 늘어났다 해도 사고의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일대일로 환자를 동시에 보살피는 것은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돌렸을 때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복도에서 미끄러지는 등 사고가 날 수 있어 간호사들은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라고 한다.
김 수간호사는 “응급사고를 막기 위해 병원에서 복도 중간 중간에 환자의 동선을 체크할 수 있는 볼록거울과 환자 진료 기록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모니터, 각종 응급처치 기구 등을 설치했다”며 “이를 통해 간호사들은 등지고 있는 쪽의 병실도 볼 수 있어 병실 안의 모든 환자를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거울을 단 이후 낙상 사고가 절반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침대마다 콜벨도 설치해 요구사항이 있거나 긴급사항이 있을 때 유용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침대 옆에 위치한 콜벨을 누르면 간호사들이 달려와 요구사항을 해결해 준다.
서브스테이션을 설치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간호사들이 모여 있는 메인 스테이션에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병상의 환자가 호출할 때 빠른 대응이 힘들어 마련한 방법이란다. 유사시 발생될 수 있는 환자의 응급처치에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렇다 보니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당뇨 합병증으로 입원한 원순목씨(64)는 “이렇게 친절한 병원은 처음 본다. 친딸보다 낫다”며 “병원에서 다 돌봐주니 식구들도 마음 편하고 나도 불안한 게 없다. 간호사들이 일이 많아 피곤할 것 같은데 퇴원할 때 맛있는 걸 꼭 사줘야겠다”고 말했다.

#부담 없는 간병비에 환자 만족도 상승
무엇보다 포괄간호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간병비 부담을 줄인 것이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다. 사설 간병인을 쓰는 환자는 하루에 약 7~8만원 하는 간병비를 전부 본인이 부담한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간병비로만 2~3조원이 나가는 이유다. 반면 포괄간호서비스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6인실 병상을 기준으로 하루 간병비를 약 1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폐렴으로 입원한 박난영(87) 어르신의 보호자인 딸 이영미씨(50)는 “보호자가 늘 있기 어려운 나 같은 경우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이 필수여서 가족들이 금전적인 부담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병원에서 간호사가 간병인의 역할까지 모두 다 해주니 금전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어 좋다”고 만족해했다.
환자들이 만족하니 간호사들의 보람도 크다.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자연스레 환자와 가까워지게 되고 신뢰관계도 형성돼 ‘보람병원’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최우영 수간호사는 “퇴원할 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눈물까지 보이는 분도 있다. 몸은 힘들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며 “환자들에겐 ‘안심병원’이지만 간호사들에게는 ‘보람병원’이다”고 말했다.

#간호인력 처우개선은 ‘미미’
포괄간호서비스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면에는 상처도 적지 않다. 간호사를 도우미 부리듯 하는 얌체 환자도 있고 요구가 지나친 가족도 있다. 무엇보다 간호인력 이탈 문제 등이 심각해 처우 개선이 절박하다.
이인덕 간호부장은 “간호사는 환자와의 접점에서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감정 소모가 크고 야간근무를 할 경우 체력소모가 많아 이직이 잦은 직종”이라며 “선진국의 경우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비율이 1대 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최소 1대 7로 규정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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