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갈증’ 모듬북으로 恨 풀었다
‘배움의 갈증’ 모듬북으로 恨 풀었다
  • 정재수
  • 승인 2007.07.2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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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버문화예술단 장 정 자 단장

지난 12일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단원들이 모듬북 공연을 펼쳐, 박수 갈채를 받았다.

 

“둥둥…, 둥둥…, 쿵덕쿵 쿵더덕….”


지난 12일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 500여명의 관객들로 가득 찬 공연장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60대 여성 13명으로 구성된 한국실버문화예술단의 ‘모듬북’ 공연. 15분 남짓한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격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 한국실버문화예술단은 지난 2004년 50대 후반 중고령 여성 20여명을 중심으로 스포츠 댄스, 각설이 타령, 민요, 타악 등 예능 프로그램을 교육하기 위해 구성된 단체다. 한국실버문화예술단을 이끌어가는 장정자(65) 단장을 만났다.

“4년 전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당시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지인의 소개로 복지관에 들르게 됐지요. 컴퓨터도 배우고 무용도 배우면서 친구들을 사귀게 됐어요. 우리 할머니들이 배움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 60~70대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는 가난과 함께 여자라는 이유로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어요. 직접 예술단을 만들어 배움에 갈증을 느끼는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남편과 일찍 사별 한 뒤 사업가로 활동했던 장 단장은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 나아갔다. 하지만 아무런 뒷받침도 없이 시작한 예술단 운영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예술단 운영은 수강료를 비롯해 연습실 임대료, 의상, 악기 등 모든 경비를 장 단장의 사비로 해결했다. 한 달 지출되는 경비만 수백만원에 달했다.

“예술단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어요. 주변에서는 6개월도 가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를 했고요. 한 달 경비만 수백만원씩 나갔거든요. 돈 나올 곳이 없으니 대출과 융자를 받으며 운영해 나갈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꺾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무용과 악기 연주에 관심이 많았던 장 단장은 북한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왔다. 북에 있을 당시만 해도 최승희 무용학교에 입학원서를 낼 정도로 남다른 끼가 있었다. 장 단장이 북채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은 6년 전 어느 공연을 관람한 뒤였다.

“국립무용단장이던 국수호 선생의 공연이었습니다. 꽹과리, 북, 장고…, 우리나라 악기 가운데 두드리는 악기는 총망라한 연주였어요. 그런데 나에게는 유독 북소리만 들렸어요. 북소리를 듣는 순간 아무 이유없이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어요. ‘저것이야!’하는 생각에 무릎을 쳤지요. 구체적으로 북을 배워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2005년 5월 모듬북을 배우게 됐어요.”

장 단장은 운영비 마련 등 수십 번 씩 좌절을 맞았지만 그때 마다 단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1~2시간씩 부족한 부분을 연습할 정도 열의를 보였다.

예술단이 2년 동안 선보인 곡은 ‘북의 향연’. 큰 무대에서는 15분, 작은 무대에서는 7분 정도의 짧은 공연이다. 같은 곡이지만 관중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공연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한다. 얼핏 들으면 모두 비슷한 가락으로 들리지만 ‘북의 향연’ 한 곡에 들어가는 가락만 100여 가지 이상이다. 그러니 그 가락을 익히는데 2년이나 걸렸다.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요. 하지만 예술단을 생각하면 쉴 틈이 없어요.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연주 강의뿐만 아니라 외국 공연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어요. 이제 조금씩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고 있는데 그만 둘 수는 없잖아요. 우리 예술단을 통해 할머니들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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