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 5개 의학회 “건강에 해롭다” 경고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 5개 의학회 “건강에 해롭다” 경고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10.28 13:34
  • 호수 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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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고기 볶던 기름을 따라 마신다. 볶던 고기에는 버터를 넣더니 달걀 10개를 푼 후 치즈를 올린다.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려 먹는다. 지난 9월 방영된 한 공중파 방송의 TV 다큐멘터리 ‘지방의 누명’에 소개된 고지방 다이어트 식단이다. 그는 하루 식사 중 탄수화물을 50g 이상 넘기지 않고 전체 열량의 70%를 지방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1년 동안 몸무게 30㎏을 감량하고 콜레스테롤과 지방간 수치까지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사람들로부터 ‘고지방 다이어트’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노에 버터를 녹여 마시는 ‘버터커피’, 삼겹살 위에 버터를 올려 싸먹는 ‘버터 삼겹살’로 고지방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형마트에서는 버터 품귀현상까지 빚어졌다.
방송에 따르면, 고지방 다이어트는 지방 섭취를 하루 영양 섭취의 70~75% 정도로 최대화하고 탄수화물 섭취는 5~10% 정도로 확 줄이는 식단 조절법이다. 사실 고지방 다이어트가 새로운 건 아니다. 20여 년 전 등장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일종으로, 지방을 강조한 버전이다.
‘지방 과다 섭취=비만’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고지방 다이어트가 모순어법으로 보이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 나름 일리가 있다.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몸에서 포도당을 지방으로 바꿔 지방세포에 저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는 탄수화물, 그것도 바로 흡수되는 단당류(설탕과 과당)가 잔뜩 들어 있어 비만의 ‘주범’이 탄수화물이라는 게 이 식이요법을 설명하는 이들의 논리다.
이에 따라 고지방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한 대형마트의 최근 버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41.4%, 치즈는 10.3%, 삼겹살은 7.6% 급증했다. 반면, 대표적인 탄수화물인 쌀은 –37%로 급감했다.
이처럼 고지방 다이어트에 대한 열풍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의학‧건강 관련 5개 학회들은 10월 26일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고지방 다이어트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고지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한비만학회, 대한당뇨병학회, 한국영양학회, 대한내분비학회,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등 전문 학회들은 “고지방 다이어트는 단기적으로 체중감량에 효과가 있지만 극도의 저탄수화물‧고지방식을 지속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서 장기적으로는 체중감량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단기간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조기 포만감을 유도해 식욕을 억제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 종류를 제한해 섭취량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런 식단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 특히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자의 경우 장기간 이같은 식이요법을 지속했을 때 건강 문제와 영양학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환자가 갑자기 탄수화물을 줄이면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 올 수 있다”며 “또 심혈관질환자의 경우 포화지방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LDL 콜레스테롤(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증가하면서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비정상적인 고지방식을 할 경우 다양한 음식 섭취가 어려워져 영양소의 불균형과 섬유소 섭취 감소를 초래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과도한 지방 섭취와 섬유소 섭취 감소는 장내 미생물의 변화와 함께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켜 우리 몸에 염증 반응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5개 의학회는 건강한 식단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신의 식사습관을 파악하고 몸에 좋지 않은 단순당과 포화지방을 우선적으로 줄일 것을 당부했다. 고혈압·당뇨병·심혈관질환 환자 또한 식단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회들은 “전 세계 모든 의학 및 영양학 전문가 단체는 탄수화물·지방·단백질 균형이 잘 잡힌 식단으로 적정 칼로리를 유지하는 것이 비만, 당뇨병 및 심혈관질환의 예방과 관리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며 “고지방 식사가 국민 건강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숱한 다이어트 방법들이 출현하고 사라졌다. 고기만 마음껏 먹는 ‘황제 다이어트’, 삶은 달걀과 자몽, 블랙커피만 먹는 ‘덴마크 다이어트’, 한 가지 음식만 집중 공략하는 ‘원푸드 다이어트’, 한 주에 한 번이상 반나절 공복을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다이어트 방법은 모든 사람들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는 제로’라는 우스갯소리가 사실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는 먹은 양보다 운동을 통해 더 많이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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