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의사’가 암 진료하는 시대 개막
‘인공지능 의사’가 암 진료하는 시대 개막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12.16 11:15
  • 호수 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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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미 IBM 개발 ‘왓슨’ 도입해 첫 진료… 의료진과 의견 100% 일치

“왓슨, 대장암 3기로 3차원 복강경 우반결장절제수술을 받은 조태현 씨의 보조 항암치료에 쓰일 의약품을 추천해 줄래?” (의료진)
“290여종의 의학저널과 문헌, 200종의 교과서와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의 임상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이 환자에게는 FOLFOX(폴폭스) 혹은 CapeOX(케이폭스) 등의 일반 항암제 약물 치료가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왓슨)
“우리 다학제팀에서 상의한 결과와 동일하구나. 이제 환자에게 설명하고 이 약물 중에 선택해서 입원 치료를 하도록 해야겠어.” (의료진)
어느 SF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국내의 한 대학병원이 도입한 인공지능(AI)인 ‘왓슨 포 온콜리지’(왓슨)를 활용해 항암치료로 어떤 것이 적합한 지 진료한 사례를 나열한 것이다.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 12월 5일 본관 1층에 최첨단 진료실인 ‘IBM 왓슨 인공지능 암센터’의 문을 열고 대장암 3기로 진단돼 3차원(3D) 복강경 수술을 받은 조태현 씨(61)를 왓슨의 첫 환자로 맞았다.
조씨는 지난 11월 14일 길병원 대장항문외과에 내원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바로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그는 16일 3차원(3D) 복강경으로 우결장 절제수술을 받고 수술 6일째 퇴원했다. 하지만 혹시 남아있을 암세포 제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보조 항암치료가 필요했고, 이에 인공지능 암센터를 방문했다.
인공지능 다학제 진료는 먼저 의료진과 코디네이터가 환자의 나이, 몸무게, 전신상태, 기존 치료방법, 조직검사 결과, 혈액검사 결과, 유전자검사 결과 등의 정보를 왓슨에 입력하고 의견을 묻는 순으로 진행된다.

▲ 가천대 길병원은 ‘인공지능 왓슨 암센터’를 개소하고 환자의 개별 특성에 맞는 맞춤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인공지능 ‘왓슨’을 이용해 다학제 진료를 받고 있는 대장암 환자 조태현(오른쪽)씨와 의료진의 모습.

대장암 환자 자료 입력 후 10초 만에 최적 치료법 등 제안
진료 시 별도로 부담하는 비용 없어… 모든 암 진료는 못해

이후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을 분류하고 각각 근거와 점수를 매겨서 치료법을 제안한다. 추천 우선순위에 따라 녹색(가장 추천하는 방법), 주황색(고려해 볼만한 방법), 빨간색(하지 말아야 할 방법) 등으로 나눠 치료법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해당 치료법을 선택하면 이를 왜 추천했는지에 대한 근거도 상세히 제시된다.
특히 12개월, 24개월 생존율 등의 지표를 즉각 보여주며 의료진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적합한 치료방법을 내놓은 데는 약 5~10초가 소요됐다.
백정흠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 기획실장은 “실제 임상에 적용해본 의료진들은 왓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진료 서비스를 정확하게 제안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왓슨의 최적화된 제안에는 다양한 진료과 전문의의 다학제 진료, 전문 코디네이터의 의견 등이 반영됐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믿을 수 있는 진료를 받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왓슨은 각종 암 치료 가이드라인과 교과서, 저널 등 방대한 전문자료를 바탕으로 최상의 치료가 이뤄지도록 의료진을 돕는 도구로, 지난 2012년부터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훈련을 받아 왔다.
길병원 본관 1층에 들어선 ‘IBM 왓슨 인공지능 암센터’는 슈퍼컴퓨터와 여러 과의 의료진이 함께 환자를 보는 다학제 진료를 기본으로 한다. 왓슨을 기반으로 병리과‧내과‧혈액종양내과‧외과 등 총 8개 진료과 30여 명의 전문의와 왓슨 전문 코디네이터가 함께 진료한다.
왓슨의 치료 효과는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지난 2014년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한 ‘M.D 앰더슨’ 병원에 따르면, 200명의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왓슨이 제시한 표준 치료법은 정확도가 82.6%에 달했고, 부정확한 경우는 2.9%에 불과했다. 또한 폐암환자에게 제안한 치료 방침의 정확도가 90%에 달했다. 이 같은 수치는 학습과 교육을 통해 더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암 환자들에게 다학제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암 치료에 있어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백 실장은 “교수들이 일일이 기억하기 힘든 세부 데이터를 소수점까지 제시하고 관련 논문의 원본까지 바로 볼 수 있도록 링크돼 있다”며 “앞으로 왓슨은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꼭 필요한 치료 시점에 데이터를 기초로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도움을 줘 개인형 맞춤형 치료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왓슨 진료에 따른 추가 비용도 관심사다. 이 언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 단장은 “왓슨은 의료기기가 아니므로 현재로선 진료 수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왓슨을 이용하는 데 환자가 부담하는 별도 비용은 없다. 단, 제도가 정비되고 수가로 인정받으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의사’의 국내 첫 도입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사들이 왓슨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왓슨으로 인해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여부 등에 대해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 언 단장은 “기본적으로 최종 결정은 의사들이 한다. 왓슨은 어디까지나 조언자 역할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왓슨은 운전 시 참고하는 네비게이션에 가깝다”면서 “네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길을 제공해 줄 순 있지만 그 길을 갈지 다른 길을 선택할지는 운전자의 몫이다. 치료 방향을 결정해 책임을 지고 환자와 소통하는 것은 결국 의사”라고 우려를 불식시켰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현재 왓슨의 암 진료영역은 폐암,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위암, 자궁경부암 등으로 제한돼 있다. 이와 함께 각각의 암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현재의 왓슨은 이를 모두 다룰 수 없는 상태다. 즉, 암의 너비와 깊이에서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있다.
백 실장은 “왓슨의 암 진료영역만 놓고 보면 전체 암의 30% 수준이며 깊이 역시 부족한 상태”라며 “내년 12월쯤이면 암 진료영역이 80%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매달 깊이도 깊어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병원은 왓슨이 장기적으로 암 진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암 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백 실장은 “이젠 한 명의 의사가 모든 암을 진료할 수 없는 시대”라며 “지금의 왓슨은 한계도 있지만 스스로 학습해 발전해 나간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쉽게 규정할 수 없다. 앞으로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인공지능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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