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늘며 실버영화관 ‘날갯짓’
관객 늘며 실버영화관 ‘날갯짓’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1.20 10:31
  • 호수 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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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상나눔버스가 뿌린 씨앗… 천안에 170석 낭만극장 개관

지난해 7월 27일 대한노인회와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영상나눔버스 시네놀이’(이하 시네놀이)가 뜨기 전까지 서천군을 비롯한 충남 일대 노인들은 마땅히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이로 인해 이날 상영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를 보기 위해 충남 곳곳서 300여명의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전국을 순회하는 시네놀이의 일정상 기약없는 이별을 했고 충남 노인들은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 날의 즐거움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충남 최초의 ‘노인전용영화관’이 탄생하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 한때 하향세를 보이던 실버극장에 어르신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추억의 명화를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는 실버극장은 노인들의 문화욕구를 풀어주며 만남의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추억의 명화 저렴한 가격에 상영… 낙원상가 극장엔 年 20만명 찾아
인천 등 일부지역선 주 1~2회 상영… 좌석 안내등 일자리 창출도

최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만 운영되던 일명 ‘노인전용영화관’이 4개월 간 전국을 돌며 영화의 매력을 선사한 시네놀이를 발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종로구에 이어 경기, 인천, 대구 등지에 6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전용영화관이 들어섰고 지난달에는 충남에도 생겨나며 경로당과 복지관에 국한됐던 노인문화공간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가장 후발주자인 충남 천안 동남구 버들로길에 자리잡은 ‘천안낭만극장’은 170석 규모로 하루에 2~3회씩 고전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개장한 이곳은 전 연령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지만 입장료에 차이가 있다. 만 55세 이상은 단돈 2000원(55세 미만은 7000원)만 내면 된다.
특히 잡음을 제거하는 흡음판을 설치하는 등 일반 극장에 버금가는 최신식 시설을 갖춰 영화 관람의 질을 높였다.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넒은 휴게실을 갖춰 관람객의 호응을 얻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꾸준히 찾는 관객들 덕분에 관객 수도 조금씩 늘고 있다. 40명이상 단체 관객이 찾기도 하고 주말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1월 14일에는 헤밍웨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1957년 제작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상영했는데 3회차 모두 매진이 될 정도로 꽉 들어찼다.
박진용(50) 대표는 “노인을 위한 문화여가시설이 부족한 요즘, 저렴한 금액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전용영화관은 꼭 필요하다”며 “올 한해는 수익과 상관없이 노인 영화 관람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후발주자가 최신 시설로 바짝 쫓아오자 원조격인 ‘추억을 파는 극장’은 지점 개장과 콘텐츠 강화로 한 발짝 앞서 가고 있다. 2009년 1월 종로구 낙원상가의 명물이었던 허리우드 극장을 인수해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 등 2개의 스크린을 개장하며 노인전용영화관 시대를 열었던 이 극장은 한때 도산 위기도 겪었다. 영화 한 편에 3000여만원의 저작권료와 극장 임차료로 매월 1600만원을 내느라 손익을 맞추기 힘들었던 김은주(43) 대표는 집과 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지만 끝내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뚝심으로 버텨냈고 꾸준히 관객이 늘면서 하루 평균 800~1000명, 연평균 20만명이 찾는 ‘종로의 명물’로 재탄생시켰다. 고무적인 건 ‘추억을 파는 극장’ 덕분에 인근 상권이 활력을 찾았고 노인 전용 카페 등 문화공간도 덩달아 확대됐다는 점이다.
또 서울시가 노인전용거리를 만들기로 결심하는데 큰 몫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서울 중구 문화일보홀 1층에 ‘청춘극장’을 운영하고 있고 경기 안산시 고잔동 ‘안산명화극장’ 등 지점을 세우며 노인전용극장의 몸집을 불리고 있다.
극장측은 ‘실버영화관’, ‘낭만극장’, ‘청춘극장’, ‘안산명화극장’에서 각각 다른 영화를 상영해 노인들의 영화 선택 폭을 넓혔다. 실제로 노인들은 각 영화관마다 월 단위로 미리 게시된 상영시간표를 확인해 요일마다 4곳의 극장을 오가며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단골인 박성철(76) 어르신은 “일반 극장에서 한편 볼 가격으로 5편을 볼 수 있어 극장별 시간표를 확인해 요일마다 순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양한 볼거리를 위해서 주말에는 영화 대신 노인이 즐길 수 있는 각종 쇼 공연을 올리는 등 차별화도 꾀하고 있다.
김은주 대표는 “극장 운영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변 상권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싶다”며 “어르신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지 들러 행복한 하루를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에선 상설운영 대신 주 1~2회씩 상영하는 수시운영을 통해 노인들의 볼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시가 운영 중인 ‘시니어키노’이다. 시니어키노는 부평구 노인종합문화회관(1관)과 부평민방위교육장(2관), 중구 한중문화관(3관), 계양구 문화회관(4관) 등 4곳에서 운영하면서 상영관별로 돌아가며 한 달에 1~2회꼴로 영화를 상영한다.
또한 노인일자리를 통해 고용된 65세 이상 된 키노도우미 40명이 좌석 안내와 질서 유지 등의 업무를 맡아 노인전용영화관의 의미를 더했다. 관람료도 없애 연간 4만명 이상 노인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앞으로 상영 횟수를 늘리고 최신 영화를 포함해 다양한 작품을 상영해 어르신들의 만족도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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