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이미지로 포착한 강렬한 애착
‘빨강’ 이미지로 포착한 강렬한 애착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2.03 14:07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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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낸 이기영 시인

  미발표 원고 등 58편 수록… 이국적 언어 사용이 특징

본지에서 ‘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을 연재하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기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사진)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엔 이 시인이 그간 계간지를 비롯한 각종 문예지의 투고한 작품들과 미발표 원고 등 58편이 수록됐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건 ‘빨강’ 이미지와 이국적인 언어로 구축한 ‘낯설고도 강렬한 그리움의 정서’다. 그의 이번 시집에서는 유독 ‘빨강’이 자주 등장한다. 1부를 여는 ‘지난날의 장미’를 비롯해 제3회 전국계간지우수작품상 수상작인 ‘머나먼 북극’, ‘슬프다는 한마디가 목에 걸렸다’ 등에서 ‘빨강’과 연관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빨강은 시각적인 반응을 가장 먼저 느끼는 색상이다. 빨강 하면 태양‧불‧피‧장미‧사과‧입술 등이 떠오르고 추상적으로는 정열‧사랑‧혁명‧위험‧흥분‧분노‧폭발 등이 연상된다. 정열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따뜻하면서 대담하고,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자극적인 효과를 준다.
과거에는 공포심과 무절제한 열정 및 지나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색상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감각과 열정을 자극하는 색상으로 힘과 에너지, 생명력 그리고 흥분감과 연관돼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기영 시인의 시에서 빨강은 강렬한 애착으로 나타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지난날의 장미’다.

쇄골이 살짝, 드러난 붉은 장미
손끝과 발끝에 힘을 준 채 코끝을 집중시키면
발가락의 진동이 머리끝까지 요동치다가
입술에 닿게 되지
아찔하게, (중략)
긴목으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距離)에서
가시는 왜 더 맹랑해질까
다시
머나먼 이름, 지난날의 장미

이 시에선 ‘머나먼 이름’과 ‘지난날’이 돼버린 무언가를 강렬한 이미지를 내뿜는 ‘붉은 장미’에 투영했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강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이국적인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표제작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비롯해 ‘울트라마린 블루’, ‘앙코르와트’ 연작, ‘소믈리에’, ‘프라하’ 등의 시에서 낯선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를 효과적으로 구사한다. 그의 시가 이국적 정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낯설어진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닿으려는 끝없는 시도이며, 잡아낼 수 없는 것을 잡으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이는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혁명가 ‘체 게바라’, 천재 시인 ‘이상’이 함께 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잘 나타난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녀는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선명하게 새겨놓음으로써, 사라져가는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와 민활한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평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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