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의 성은 장씨, 과거시험에도 합격했다고…”
“흥부의 성은 장씨, 과거시험에도 합격했다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7.07 13:52
  • 호수 5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 발견… 구전 소설의 다양한 異本들
▲ 최근 발견된 '흥부만보록'. 가장 오래된 흥부전의 이본으로 기존 내용들과 달리 흥부의 성이 '장' 씨이고 그를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회지도층으로 그리고 있다.

구전이야기 손으로 옮겨 적으면서 필사자가 첨삭하는 경우 많아
후일담 기록, 주인공 악하게 묘사, 인물 누락 등 주요 내용 달라져

최근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이본(異本)이 발견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본이란 필사본 중 내용상 차이를 보이는 작품을 말한다. ‘흥보만보록’이란 제목의 이 이본은 1833년에 기록된 것으로 40여종의 흥부전 중 최고(最古)본이다.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이본은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소장 ‘흥보젼’이었다. 1897년 필사본이지만 1853년 것을 모본(母本)으로 했다는 기록이 있어 가장 이른 시기 모습을 간직한 ‘흥부전’으로 평가받았다. 이번에 발견된 흥보만보록은 기존과 달리 흥부의 성씨를 ‘연’이 아닌 ‘장’으로 기록했고 배경도 삼남지방이 아닌 평안도 평양이었다. 또 과거시험에도 합격한 사회지도층으로 묘사해 국어학자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흥부전을 비롯해 ‘심청전’, ‘춘향전’ 등 판소리계 소설, ‘선녀와 나무꾼’, ‘장화홍련전’ 등의 전래동화는 다양한 이본이 존재한다. 구전이 되다가 인쇄술 등장 이후에나 기록으로 전해진 작품들은 18세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으로 일일이 베껴서 옮겨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을 옮겨 적을 때 필사자가 원래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소 다르게 적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같은 작품인데도 필사본에 따라 내용상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한 19세기 방각본(목판 인쇄)이나 20세기 활자본으로 간행할 때도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존 작품에 이야기를 첨가하거나 보완해 약간씩 바꿔 간행하기도 했는데 이런 결과로 또다시 원본과 내용상 차이를 보이는 작품이 나오게 된다. 이처럼 간행되는 과정에서 원본과 차이를 보이는 작품이 나와 유통되었는데 이를 모두 이본이라고 한다. 예컨대 ‘나무꾼과 선녀’는 지금까지 100여편이, ‘심청전’은 230여개의 이본이 발굴됐다.
현재 널리 알려진 이야기와 달리 이본 속 주인공들은 욕심이 많은 인물들로 부각되거나 파렴치한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국문 필사본 ‘흥부전’(김진영 소장 46장본)에서 흥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 아닌 이기적인 사람으로 표현했다.
“무지한 저 흥보는, 밥 먹기에 윤기(倫紀) 잊어, 자식 몇 놈이 뒈져도, 살릴 생각은 아예 않고, 그 뜨거운 밥이로되, 두 손으로 서로 쥐어, 세죽(細竹) 방울 놀리는 양, 크나큰 밥덩이가 손에서 떨어지면, 목구멍을 바로 넘어, 턱도 별로 안 놀리고, 어깨춤 눈 번득여.”
이본에는 알려지지 않은 후일담을 기록한 작품들도 있다. 콩쥐팥쥐의 경우 ‘결혼 후일담’이 담긴 것도 많은데 대략의 내용은 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던 콩쥐가 팥쥐 모녀의 계략으로 물에 빠져 죽었다가 연꽃, 오색 구슬, 사람의 단계로 환생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토끼전은 용왕의 후일담을 저마다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가람본 ‘별토가’에서는 자라를 기다리던 용왕이 병이 심해져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는 것으로 처리한다. 경판본 ‘토생전’에서는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안 자라가 목숨을 끊자 용왕은 자신의 욕심으로 충신을 잃었다며 후회하고 태자에게 어진 정치를 부탁하며 죽는다. 또 신재효본 ‘퇴별가’에서는 다른 이본과 달리 병이 낫는데 자라가 토끼 똥을 얻어 와 병을 고친다.
잔혹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도 많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한 이본에서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협박하던 호랑이가 어머니의 치마저고리와 팔다리도 하나씩 요구하는 잔혹한 내용도 담고 있다. 과거 TV에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콩쥐팥쥐의 한 이본은 환생한 콩쥐가 팥쥐를 끓는 물에 삶아서 젓갈을 담근 뒤 계모에게 먹이는 내용을 수록했다. 이후 계모는 마지막에 남은 뼈를 보고 자기가 먹은 젓갈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처리한다.
익숙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불쌍한 심봉사를 등쳐먹는 뺑덕어미는 심청전의 유일한 악역이자 감초 역할로 무거운 분위기 작품에서 해학과 웃음을 준다. 경판(京板) 24장본을 비롯해 여러 이본에는 뺑덕어미가 등장하지 않는다.
일제의 영향으로 왜색을 띠거나 전혀 다른 결말로 바뀌기도 한다. ‘선녀와 나무꾼’은 현재 알려진 비극적인 결말 대신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난 선녀가 그리워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나무꾼 승천형’ 결말로 한동안 교과서에 실렸다. 이 결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가 만든 어린이 책 외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 흥부를 따라 박을 타는 놀부 앞에 나타나 호되게 꾸짖는 장수 장비(張飛)는 대부분의 그림책과 교과서에서 일본 도깨비 오니로 둔갑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일제의 영향으로 보인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