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낙타
낙타의 이름으로
황혼으로 가는 긴 여정
민정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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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온 몸으로 태양을 이겨내며 가고 있다. 마치 사막을 건너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한 마리 낙타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로를 묵묵히 견디며 걷고 있다.
이제 곧 하루가 지고 밤이 올 텐데 제 등에 올려진 등짐을 내릴 수도 없이 밤을 견뎌야 하리라. 타는 목마름만이 더 간절하게 오아시스를 그리워할 것이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매일 맞이하는 저 장엄한 광경을 뒤로 하고 다시 또 모든 하루의 마지막 같은 오늘을 준비해야 하리라.
나무나 낙타나 우리들은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목숨을 가진 뭇 생명들의 징표인 물의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분모. 나무든 낙타든 사람이든 뭐든 간에 모두 황혼으로 가는 긴 여정에 함께 동승해 있다. 무거운 등짐 하나씩 짊어지고 가고 있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든 간에 오늘 하루 후회 없이 살았으면 싶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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