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34]달빛 아래에서 국화를 보며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34]달빛 아래에서 국화를 보며
  • 강 만 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승인 2017.12.08 10:52
  • 호수 5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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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에서 국화를 보며[月下賞菊]

흥이 나면 그 어딘들 풍류 아닌 곳 없나니

명절이란 모름지기 물색에서 찾아야지

노란 국화 활짝 피면 그날이 중구일이고

푸른 하늘에 달 걸리면 그날이 중추절이로다

밝은 달빛 자리에 비추니 시혼이 맑아지고

어여쁜 꽃술 술잔에 띄우니 술맛이 부드럽네

이 꽃을 마주하며 이 달까지 함께 어울리니

적선이랑 팽택이랑 함께 노니는 격일세 

興來無處不風流 (흥래무처불풍류)

佳節須從物色求 (가절수종물색구)

黃菊有花皆九日 (황국유화개구일)

碧天懸月卽中秋 (벽천현월즉중추)

淸光照席詩魂冷 (청광조석시혼랭)

嫩蘂當樽酒味柔 (눈예당준주미유)

相對此花兼此月 (상대차화겸차월)

謫仙彭澤擬同遊 (적선팽택의동유)

- 권벽(權擘, 1520~1593), 『습재집(習齋集)』 권2「월하상국(月下賞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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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국화를 보며(月下賞菊)’는 조선 중기의 관료이자 문인인 권벽이 어느 가을밤의 정경을 읊은 시이다.

제1구와 제2구에서는 구체적인 정경을 묘사하기에 앞서 통념을 찌르는 저자의 생각을 서술한다. 즉, 제3구에 나오는 중구일(重九日)에는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며 제4구에 나오는 중추절(仲秋節)에는 달맞이를 하는 풍습이 있으므로, 중구일에는 국화를, 중추절에는 달을 연관 짓는 등 특정 명절의 정경을 반드시 이러하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상투적인 경향이 있다. 명절은 미리 정해진 날뿐만이 아니라, 흥이 날 만한 물색을 보게 되는 바로 그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제3구와 제4구에서는 앞에서 했던 말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저자가 시를 지은 그날이 바로 흥이 날 만한 물색을 본 날, 즉 명절임을 드러낸다. 오늘이 중구일이나 중추절은 아니나 노란 국화가 활짝 피고 푸른 하늘에 달이 걸렸으므로 명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제5구와 제6구에서는 달빛 아래에서 국화를 보는 작자의 실제 상황을 묘사한다. 자리에 비친 달빛을 보니 작자의 정신이 맑아지고 잔에 띄운 꽃술 덕에 술맛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작자가 실제 오감으로 느낀 바를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도 작자가 느낀 시각과 미각, 그리고 후각적인 느낌까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제7구와 제8구에서는 국화와 달에 대응하는 팽택(彭澤)과 적선(謫仙)이 등장한다. 팽택은 팽택령(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 365~427)을 가리키고, 적선은 이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란 뜻으로 이백(李白, 701~762)을 뜻한다. 도잠은 「구일한거(九日閒居)」 등의 시에서 국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었고 이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 등을 통해 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였다. 시에 국화가 나오면 도잠을, 달이 나오면 이백을 은연중에 가리키는 시적 전통을 계승하여 표현한 것이다. 결국 평범한 날에 불과했던 이날 밤은 국화에다 달까지 등장하면서 특별한 날이 된다. 

명절이라 경치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경치가 아름다운 날이 명절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혜안을 배워야겠다.    

강 만 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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