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36]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36]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17.12.15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닭이 알을 품고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이,

굶주린 자 밥을 찾고 목마른 자 물을 찾듯이,

어린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切心做工夫(절심주공부).

如雞抱卵(여계포란) 如猫捕鼠(여묘포서),

如飢思食(여기사식) 如渴思水(여갈사수), 

如兒憶母(여아억모).

 

- 휴정(休靜, 1520~1604), 『선가귀감(禪家龜鑑)』

**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고3 교실에 붙어 있을 법한 글귀다. 열심히 공부하여 더 좋은 대학에 가라, 더 좋은 직장에 가라, 더 높은 지위에 오르라, 더 많은 돈을 벌어라, 우리 사회에서 보통 공부는 그런 것이다. 휴정도 그런 뜻으로 간절히 공부하라고 한 것일까.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당(淸虛堂) 휴정은 임진왜란 때 침략한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선 승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사명 유정(四溟 惟政), 소요 태능(逍遙 太能), 편양 언기(鞭羊 彦機) 등의 수많은 문도를 양성하고『선가귀감』,『삼가귀감(三家龜鑑)』,『선교석(禪敎釋)』,『심법요초(心法要抄)』,『운수단(雲水壇)』, 『청허당집(淸虛堂集)』 등의 여러 책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선가귀감』은 그의 저술 중의 하나로, 여러 불교 전적에서 귀감이 될 만한 글을 뽑아 해설을 붙인 책이다. 일찍이 언해(諺解)되었고, 조선 후기에 다수 간행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도 전래되어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휴정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고 한 공부는 다름 아닌 수행이었다. ‘공부(工夫)’는 불가와 유가에서 모두 쓰였던 말이므로, 수행이라고 풀이해도 좋고, 수양이라고 풀이해도 좋다. 분명한 것은 그 공부가 자신의 삶과 유리된,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출세의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삶의 문제에 대한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을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공부를 지향했다고 할까. 이제야 위 글귀가 조금 이해된다. 삶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성찰하라, 노력하고 노력하라, 그 간절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것이 휴정이 간절히 공부하라고 한 말의 속뜻이 아닌가 한다.

저명한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다가올 역사, 서양문명의 몰락』에서 현대 문명이 몰락한 300년 후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렸는데, 인류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의 지식이 무척 방대했다는 점, 그런데도 지식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는 지식이 수단이 되는 세상, 공부가 수단이 되는 세상에 대한 경고와 다름없다. 지식이, 공부가 삶과 괴리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보통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 공부 말이다.

혹여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늘이라도 선현들이 하라고 했던 그 ‘공부’를 한번 돌아보아도 좋겠다. 간절한 마음으로.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