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조각의 거장’ 자코메티 걸작 국내에 첫선
‘현대조각의 거장’ 자코메티 걸작 국내에 첫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1.05 14:13
  • 호수 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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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
현대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상
현대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상

1억393만 달러에 낙찰된 ‘걸어가는 사람’ 원본 석고상 등 110여점 

수행 중인 승려 연상케 하는 ‘로타르 좌상’, 지인들 흉상 등 인상적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2010년 소더비 경매장. 경매사가 낙찰가를 선언하고 봉을 세 번 두드리자 장내가 술렁인다.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역작 ‘걸어가는 사람’이 1억393만 달러라는 당시 조각작품으론 역대 최고가로 낙찰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선 이 역작의 원본을 볼 수 있었다. 팔다리가 긴 앙상한 남자의 위대한 한 걸음은 관람객들에게 뭉클함과 함께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었다. 

현대미술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작선이 한국을 찾았다. 작품평가액 총액이 무려 2조1000억원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이 내년 4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전시에서는 ‘걸어가는 사람’을 비롯해 총 41점의 조각과 자화상을 비롯한 11점의 회화, 26점의 드로잉과 판화 등 총 116점의 엄선된 명작들로 구성됐다. 

스위스 태생인 자코메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이상 걷어낼 것이 없는, 철사처럼 가늘고 긴 인간 형상을 만들어냄으로써 현대 조각사에 획을 그었다. 전쟁이 남긴 폐허, 대량살육의 상흔과 허무를 딛고 인간 본질과 실존의 문제를 치열하고 심오하게 다뤘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자코메티는 1922년 파리로 유학, ‘근대 구상 조각의 거장’ 앙투안 부르델로부터 처음 조각을 배웠다. 1928년부터는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했다. 이후 그는 1930년대까지 ‘남과 여’ ‘새벽 4시의 궁전’(1932) 등 초현실주의적 특징이 강한 작품을 제작했다. 동료작가와의 의견충돌로 1934년 초현실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자코메티는 인간의 형상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매일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흉상을 제작했다. 

일반 조각은 재료를 붙여가면서 형태를 만들지만, 자코메티는 완성된 형태에서 하나하나씩 떼어내는 방식으로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듯한 앙상한 몸통과 얼굴은 그렇게 탄생했다. 덜어냄의 끝이 어딘지 모른 채, 많은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허망하게 깨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의 허약함과 덧없음, 그리고 고독을 표현했다. 

로타르 좌상.
로타르 좌상.

1962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조각부문 대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조각가로서 절정기인 65세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 조각칼을 내려놓은 그를 위로하듯 미술계는 가장 비싼 경매가격으로 화답하고 있다. ‘가리키는 남자’(1948)가 2015년 조각 사상 최고가인 1억4128만 달러에 낙찰되는 등 경매에 출품될 때마다 수백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볼 작품은 단연 뉴욕의 체이스맨해튼은행 빌딩 앞 광장에 설치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어가는 사람’이다. 특히 이번에 한국을 찾은 건 청동상이 아닌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석고상이다. 조각 작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흙으로 형상을 빚는다. 여기에 거푸집을 만들어 석고를 붓고 굳혀서 석고상을 만든다. 석고상은 작가의 손이 닿는 마지막 단계다. 통상 흙으로 만든 형상은 없어지기 때문에 석고상은 작가의 체온과 숨결이 밴 유일무이한 원본이다. 작가 소장본(Artist Piece) 혹은 ‘에디션 0번’으로 불리는 이유다. 판매용 청동상 작업은 석고상을 토대로 제작된 틀에 주로 조수들이 청동 쇳물을 부어 여러 개를 만든다. 

석고 원본은 작가의 호흡과 손길이 밴 마지막 단계다. 청동 조각의 3배 정도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석고 원본의 작품 평가액만 3800억원에 달한다. 작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앙상한 몸이지만 어디로 가는지 분명해 보이는 확고한 자세와 역동성을 담아내 되려 강인함을 보여준다.

‘로타르 좌상’은 유작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온다. 자코메티는 흙으로 조형을 빚는 과정에서 점토원형에 젖은 천을 씌워놓은 채 심장의 발작으로 병원으로 향했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동생 디에고가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무릎을 손에 얹은 채 단정히 꿇어앉은 자세, 머리카락이 없는 머리, 조금 위를 향해 든 턱과 시선, 앞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꿰뚫어 그 너머를 보는 듯한 눈빛 등은 수행 중인 동양의 승려를 연상시킨다. 

이와 함께 병상을 지키던 마지막 모델인 캐롤린을 빚은 ‘캐롤린 흉상’(1961), 일본인 친구 야나이하라를 모델로한 ‘야나이하라 흉상’(1961), 그리고 아내 아네트와 작업 동반자인 남동생 디에고를 본 뜬 ‘아네트 흉상’(1962)과 ‘디에고 흉상’(1962) 등 그의 말년 대표작도 인상적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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