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40]어리석음 팔기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40]어리석음 팔기
  • 권헌준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18.01.12 10:48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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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 팔기

해마다 어리석음 팔건만 어리석음 여전히 남아

오히려 옛날의 내가 지금까지 이어졌네 

歲歲賣癡癡不盡 (세세매치치불진)

猶將古我到今吾 (유장고아도금오)

- 안축(安軸, 1282~1348), 『근재집(謹齋集)』「정월 초하루에[元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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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은 고려 후기 문신이자 문인이었던 근재 안축이 정월 초하루에 쓴 시의 일부입니다. 얼핏 보면 이 시는 젊은 시절 미숙했던 모습 그대로 나이만 들어가는 자신에 대한 자조를 담은 넋두리 정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넋두리 속에는 해마다 어리석음을 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모습과 늘 결과에 대해 부족하다 느꼈던 철저한 자기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에 “마음가짐이 공정하였고 근검으로 집안을 다스렸다[處心公正, 持家勤儉]”라는 사평(史評)과 이곡(李穀)이 쓴 「묘지명」에 “말을 분명하고 유창하게 하여 감추는 것이 없었으며, 관직을 수행할 때에는 근면하여 권태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선(善)을 보면 칭찬하기를 마지않아 좋은 평판이 많았고, 악(惡)을 보면 피하며 가까이하지 않아 원망이 적었다. 자신이 거처하는 곳을 근재(謹齋)라고 스스로 명명하였으니 그 뜻을 볼 수 있다[發言便便無遁詞, 居官矻矻無倦色. 見善則稱之不已, 故多譽, 見惡則避之不近, 故寡怨. 自號所居曰謹齋, 其志可見已]”라는 평을 얻은 것도 꾸준한 반성과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에 지치거나 타성에 젖어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개발에 소홀합니다. 그럼에도 지금보다 미래는 좀 더 나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늘 자신의 노력은 알아주지 않고 천재라는 수식어만을 붙여 주는 사람들에 대한 다소 과격한 충고이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어제와 똑같이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희망찬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공자는 ‘세월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歲不我與]’라고 하셨습니다. 기다려 주지 않는 세월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실천하는 작은 노력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노력을 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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