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41]저물녘 눈 내리는 강가의 풍경[江天暮雪]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41]저물녘 눈 내리는 강가의 풍경[江天暮雪]
  • 김 준 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승인 2018.01.19 10:36
  • 호수 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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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눈 내리는 강가의 풍경[江天暮雪]

 

바람은 거세 구름 모양 애처롭고

날씨는 추워 눈 오는 기세 삼엄하네

흩날리는 곱디고운 눈발을 가지고 놀면서

집집마다 소금을 쌓아 놓았네  

 

멀리 포구에 고기잡이 배 돌아오고

외딴 촌락에 술집 깃발 내려졌네

삼경에 개인 설광이 은빛 달을 질투하여

다시 성근 주렴을 매달려 하네

 

風緊雲容慘(풍긴운용참)

天寒雪勢嚴(천한설세엄)

篩寒洒白弄纖纖(사한쇄백농섬섬)

萬屋盡堆鹽(만옥진퇴염) 

 

遠浦回漁棹(원포회어도)

孤村落酒帘(고촌락주렴)

三更霽色妬銀蟾(삼경제색투은섬)

更約掛疏簾(갱약괘소렴)

-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익재난고(益齋亂稿)』 권10,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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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장가 이제현은 소상강의 아름다운 여덟 경치를 사(詞)의 곡조 중 하나인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을 사용해 묘사했다. 이 시는 그중 다섯 번째 저물녘 눈 내리는 강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강천모설(江天暮雪)」이다.

소상강의 경치들은 송나라 때부터 시제(詩題)나 화제(畫題)가 되어 직접 가 보지 않은 사람들도 시를 짓거나 그림으로 그렸다. 이제현은 중국에 오래 있었지만, 소상강에 갔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소상강의 경치를 다룬 시나 그림을 접하고 나름의 상상으로 이 작품을 지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전단(前段)은 구름이 일그러질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고 차디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눈이 지붕 위에 소복이 쌓여 있는 광경을 묘사했다. 여기서 3구의 ‘篩寒洒白弄纖纖(사한쇄백농섬섬)’ 구절이 재미있다. ‘篩寒洒白’은 한기를 체로 걸러 흰 가루를 뿌린다는 의미이다. ‘纖纖’은 곱디고운 눈을 지칭하며, ‘弄’ 자가 붙어 고운 눈을 가지고 논다고 해석된다. 이제현은 눈 오는 모습을 어떤 존재가 한기를 체 쳐서 나온 흰 가루를 가지고 노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발상 때문인지 다음 구절의 소금을 집집마다 쌓아 놓았다는 표현이 더욱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후단(後段)은 인적이 드문 어촌 마을의 풍경을 묘사했다. 저물녘 고깃배가 돌아오고 인적도 흩어져 주막도 문을 닫았다. 삼경의 시간, 어느새 눈은 그치고 눈 내린 마을 위로 시리도록 흰 달이 떴다. 이제현은 눈과 달빛이 공존하는 광경을 눈의 빛이 달빛을 질투하여 성근 주렴을 쳤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성근 주렴의 의미가 심장하다. 날씨도 추운데 문을 닫았으면 닫았지 왜 주렴을 걸었을까? 혹시 주점 처마에 주렁주렁 걸린 고드름이 성근 주렴 같아 보였던 것은 아닐까? 눈이 달의 흰빛을 질투해 ‘쳇’ 하면서 고드름 주렴을 냅다 걸어 버렸다고 생각하면 전단과 마찬가지로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나는 듯하다.    김 준 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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