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장
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장
  • 김용민
  • 승인 2008.03.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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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협 위상 높이고 출판인 권익 신장에 앞장 선다

백석기 회장은 1955년 해군사관학교 생활을 시작해 1990년 초반 해군제독으로 예편할 때까지 35년여를 군인생활을 했다. 군에서 전역한 뒤에 웅진출판 CEO를 맡았을 때만 해도 중량감 있는 제독으로 하향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윤석금 회장과 함께 웅진그룹의 사세확장을 이끌며 은퇴 뒤의 제2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했다. 한때 협성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출협 부회장, IPA국제위원회 회원, APPA 실무위원장을 맡는 등 출판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했다. 2월 19일 출협 회장에 당선된 그를 만나 출협을 이끄는 각오와 성공적인 제2의 삶을 개척한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출판문화협회 회관 건물 1층 로비에는 이 회관을 건립할 때 건립비용을 기부한 수많은 출판인의 이름을 새긴 동판이 전시돼 있다. 올해 73세인 백석기 출협 회장은 이 동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출협 회관을 건립할 당시에 그는 군인이었고, 출협 회관이 건립된 때로부터 16년여가 흐른 뒤 그는 출판계에 투신했다. 해군 제독으로 예편하고서야 제2의 인생을 출판계에서 찾은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출판계에 뛰어들었으나 그는 (주)웅진출판 CEO를 역임하며 굴지의 출판문화그룹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면서 출판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잠시 협성대 총장을 역임한 것을 빼면 1996년의 출협 부회장, IPA서울총회유치활동, IPA저작권위원회 위원, 한국복사전송권협회 부이사장 등 출판과 관련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일들을 수행해 왔다. 현재 공옥출판사, 생각나라 등의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기도 한 그의 ‘제2의 인생’은 누가 보아도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2008년인 오늘까지 근 20여년 가까이 출판계에 몸담고 있으니 예비역 제독이라는 수식어보다 출판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물론 우리 출판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 됐다. 출판이 일제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지식산업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구자적인 선민의식이 있고, 연륜이 있는 출판사들의 권위와 자부심도 강한 편이다. 그런데도 백 회장이 이번에 출판계를 이끄는 수장이 된 것은 그의 다채로운 이력과 CEO로서의 경력이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인생의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후반기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성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많이 있다. 또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백 회장처럼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그 분야의 주류에 편입하는 모델도 나타나게 돼 있다.

 

이번에 출협 회장이 된 예비역 해군제독 백석기 장군은 후자 중에서 앞서가는 모델이다. 그를 새로운 리더로 맞이한 출판계 역시 어느 분야보다 열린 마인드를 지닌 것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대에 부응한 듯, 백 회장은 출협 사보인 ‘출판문화’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포부를 밝혔다.


“회원사들이 협회에 가입한 보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운영할 겁니다. 협회는 출판인들의 권익보호와 증진을 위해 설립된 기본 취지에 따라 그 본분을 다해야 하지요. 미력하나마 제 의지와 노력이 빛을 발해 우리 출판계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밀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웅진출판에서 CEO를 할 때 그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경영방식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에 밴 군 생활과 함께 이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웅진출판이 1990년대에 중견 이상의 기업그룹으로 사세를 성장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협성대 총장으로 재직할 때에도 그는 이런 방침을 고수했고, 긴축 경영을 해서 재정의 10%를 감축하는 등 경영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존경하는 원로가 많고, 출판인들이 원로들을 우대하는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백 회장. 봄이 한창인 때와 같이 축하 난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널찍한 접견실에서 그는 청년처럼 젊게 웃으며 “생동하는 출협,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출판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출협 회장을 맡은 지 1개월여가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이사진 구성을 마쳤습니다. 부회장 상무이사 등을 위해 의견조정을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회장 선거 때 출협에 상근하면서 생동하는 조직으로 변화시키겠다고 했던 대로 하고 있습니다. 2월 19일 총회를 한 뒤 20일부터 거의 날마다 출근했지요. 현황을 알아야 하니 결재 서류 보고 회의할 때 팀장의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부 눈에 띄는 것에 대해 코멘트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좋아질 것입니다.”

 

- 해군 제독, 웅진출판 CEO를 역임했습니다. 출협은 그런 조직과 운영 스타일이 다를 텐데, 성공 비결이라면.
스무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56살에 웅진에 들어갔으니 평생을 군에서 생활한 셈입니다. 그러나 낯가림 없이 잘 적응했습니다. 좋게 해석해본다면 내가 굉장히 열심히 일합니다. 파고들 때 파고들고, 원칙을 지킬 때 지키지요. 내가 전직이 해군제독이었으니 어쩐다는 그런 의식은 갖지 않았습니다. 거드름 안 피우고 그랬던 것이 웅진출판 CEO로서 적응하고 경영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 인생의 황금기는 군인으로 보냈습니다. 은퇴 후를 계획하고 준비했는지 
나는 은퇴 후에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 치밀한 계획이 없이 전역했습니다. 열심히 군 생활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서울대 AMP(최고경영자과정)에서 웅진출판 윤석금 회장과 사귀었고, 그분의 권고로 웅진에 들어갔지요.

 

- 3성 제독으로 은퇴해서 당시 웅진에 갔다면 작은 데 간 셈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당시 육·해·공의 같은 계급 사람들이 나를 보면 ‘너 때문에 3성 장군 위신이 떨어진다고 농담 비슷하게 말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습니다. 사실 국방부 등의 로비스트나 이름이 있는 재벌기업의 CEO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율곡사업을 많이 했던 사람으로 전역 후에 기다리고 있으면 방위사업 분야에서 할 일이 있을 것도 같았으나 웅진 행을 택했습니다. 당시 웅진은 작았지만, 윤 회장의 제의가 끌렸습니다. 윤 회장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회사가 작지만 잘해서 보람이 크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은퇴 후에 하향 지원을 하는 이른바 사오정, 오륙도 은퇴자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자기가 할 수 있고 적성에 맞는다면 구태여 (지위의 높고 낮음을)가릴 것이 있느냐는 생각입니다. 뭐든 열성을 가지고 한다면 보람인 것이지요.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36년생이니 나이가 많은 축인데 나는 지금도 일을 하면 누구한테도 안 떨어진다고 자부합니다. 경쟁해보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제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완성하고, 쇠 같으면 녹여놓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은퇴 뒤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웅진출판(주)의 규모가 CEO로 있을 때 대폭 확대됐는데 
거기서 대표이사를 한 8년 했고 2년은 고문으로 있었습니다. 웅진 운석금 회장은 영업 마인드가 뛰어납니다. 조직관리는 내가 했지요. 그게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윤 회장의 기발한 장점을 살리고 조직관리를 맡은 내 장점을 살렸습니다.

 

- 웅진출판부터 보자면 출판계에 들어온 지 20여년이 됩니다. 출협회장으로서나 출판인으로서 출판계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신 게 있다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군요. 군인출신이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출판인들은 개성이 있어보였습니다. 남에게 꿀리는 것을 싫어하더군요. 그 가운데도 선배출판인을 모시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은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저작권을 수입해서 사업을 하는 데가 많습니다. 저작권 수출은 미약합니다. 작품을 만든 것이 외국어로 번역이 안 되고 소개도 안 된 것이 있지만, 창작력이 부족한 면도 있습니다. 우리 출판이 이런 면에서 전통을 이을 것은 잇고 개선할 것은 개선했으면 합니다.

 

- 출판계에 단행본출판사, 전집류 출판사의 약간의 간극이 있는 것 같은데.
단행본 하는 쪽에서는 전집류 쪽을 진정한 출판보다 장사에 역점을 둔다, 그런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단행본은 회사는 규모가 작습니다. 전집류 쪽은 편집국을 따로 두고 대량 개발을 하고 있으니 그런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서로를 공격하고 허물을 들추는 것보다 자기 것을 더 빛내는 쪽에 머리를 쓰고, 좋은 책을 만들어 자기 보람을 찾아가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우리나라는 인쇄 출판 역사가 오랜 나라입니다. 세계화 포부나 프로그램이 있는지요 
한국은 세계 10대 출판대국입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우리 책과 문화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2008 IPA 서울총회, 2009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 유치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아시아는 기본이고 영미, 유럽권 등 소위 출판강국 사이에서도 한국출판의 행보는 예의주시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출판 종수로 보면 아직 미약합니다. 학습지 한 월호 분까지 종수로 들어가서 그 정도이니까요. 내용에 있어서 주의를 끌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 출판계에 들어와 가장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일이라면 
웅진출판(주)에서 나름대로 성공했고, 대학총장도 했던 것을 저는 특별한 은총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출협 회장이 된 것도 그래요. 전문 출판인이 아니라고 선거 중에 공격받기도 했으나 이런 중책을 맡은 것은 출판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일생에서 정말 뜻 깊고 보람된 일입니다. 올 5월에는 제28차 국제출판협회 서울 총회가 열리고, 2008 서울 국제도서전을 개최합니다. 출협 회장으로 이 두 행사를 치러내는 것도 일생에서 큰 보람일 것입니다.

 

- 출협을 이끌어가는 포부를 밝혀주신다면.
출협은 지난 60년간 현대 출판산업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출판산업의 발전을 위해 출협 산하에 두었던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과 한국출판연구소가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하였고 한국출판협동조합, 한국출판인회의와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등이 별도의 단체로 설립되어 각종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단체별로 대정부 활동을 경쟁적으로 전개하다 보니 출판계의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배려하고 양보하며 출판계의 화합으로 위상을 높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재임 기간 동안 출판 관련 단체들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마련하여 한국 출판계가 세계로 웅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묻는 질문입니다. 70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데, 건강은 어떠신지.
건강은 잘 타고났습니다. 젊은 때부터 지금까지 체격이 거의 같습니다. 해군 함대에서 생활할 때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스트레칭 체조를 개발했는데, 지금까지 계속합니다. 지금도 아침에 자고 일어나 20~30분 정도 체조를 합니다. 밥은 안 먹어도 이 체조는 꼭 해요. 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로 합니다. 엎드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이것저것 내가 개발한 체조를 합니다. 물론 골프나 테니스 같은 운동도 합니다.

 

- 출협이 경로당에 책보내기, 책읽기 등에도 노력해주실 수 있는지요 
적극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백석기 회장은… 
1959 해군사관학교 졸업
1966 성균관대학교 졸업(경제학과)
1989 서울대 경영대학원 AMP 27기 수료
1990 해군 제독으로 전역
1991 ㈜웅진출판 대표이사
1996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42대, 43대)
1996 국제출판협회(IPA) 저작권위원회 위원
1998 공옥출판사, ㈜생각나라 대표이사
2000 아시아태평양협회(APPA) 실무위원회 위원장
2000 한국복사전송권협회 부이사장
2003 협성대학교 제5대 총장 취임(임기 4년)
2005 미국 켄터베리 대학 명예 인문학 박사
그 외 인헌무공, 보국훈장 삼일장 등 수상

 

박병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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