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62]익숙해질 때까지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62]익숙해질 때까지
  • 하 기 훈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18.06.22 13:11
  • 호수 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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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질 때까지 

성인(聖人)이 성인이 된 까닭은

‘숙(熟)’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숙(熟) 자를 깊이 음미해 보면

그 의미가 무궁하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聖人之所以爲聖人(성인지소이위성인),

不過一熟字耳(불과일숙자이).

深味熟字(심미숙자), 

其意味無窮(기의미무궁), 

豈不好乎!(기불호호)

- 임성주(任聖周, 1711~1788), 『녹문집(鹿門集)』 권17「한천어록(寒泉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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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 녹문(鹿門) 임성주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서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를 뵈었습니다. 젊은 녹문은 노성한 도암에게 그간 학문하며 의문스러웠던 점을 여쭈었습니다. 「한천어록」은 그때 도암과 녹문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문답식으로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녹문이 그 유명한 『논어』의 맨 첫 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 대해 묻자 도암은 자세하게 답을 해 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인이 성인이 된 까닭은 ‘숙(熟 익숙함)’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숙(熟)’ 자를 깊이 음미해보면 그 의미가 무궁하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면 제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성리학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배우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때때로 익혀서[時習]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도암은 여기에서 ‘숙(熟)’ 한 글자를 강조합니다. 배운 것이 진정 내 것이 되려면 완전히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성인(聖人)들도 사실 익숙해질 때까지 자신이 배운 것을 익힌 사람들이었지, 처음부터 우리와 바탕이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도암은 녹문에게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고, 익숙해지도록 해서 종국에 성인이 되기를 기약하는 공부를 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현대인과 공부(工夫)의 목적도 다르거니와 공부 과정 역시 다릅니다. 지식의 홍수라고 할 만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느 한 가지만 진득하게 탐구할 여유가 없습니다. 더 많이 보려 하고 더 많이 얻으려 해서 조금이라도 진척이 보이면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옛사람들이 특히 경계했던 것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진득하게 노력하여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렇듯 옛사람들의 방식은 ‘더 빨리 더 많이’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반성(反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 기 훈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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