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63]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63]
  • 이 기 찬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문헌번역실장
  • 승인 2018.06.29 13:40
  • 호수 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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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운 소슬한 비 개인 하늘 아래

빈 뜰에 가로 선 모습 여전하였는데

폭풍으로 하룻밤새 그대조차 넘어지니

만리 이역 머무는 내 신세도 가련하네 

曉氣蕭涼雨後天 (효기소량우후천)

空庭橫立尙依然 (공정횡립상의연)

暴風一夜君從倒 (폭풍일야군종도)

萬里遊人亦可憐 (만리유인역가련)

- 조소앙(趙素昻, 1887∼1958), 『동유약초(東遊略抄)』 제4편 1910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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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조소앙 선생이 스물네 살 때 지은 시이다. 성균관에서 수학하다 1904년 대한제국 황실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간 그는, 8년 간 동경부립 제일중학교와 명치대 법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이때의 유학생활 전 과정을 기록한 일기가 바로 《동유약초》이다. 한문으로 쓰여진 이 일기에는 ‘한 구본신참(舊本新參) 지식인의 지적 성장과 편력, 그리고 근대학문 학습의 전 과정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10년 경술국치 전후의 일기에는 일제에 의해 조국이 병탄되는 절망적인 때에 적국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신의 참담한 심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렇다고 그가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일합병 직전에는 그 음모를 국내에 알리고자 일본 신문의 밀송(密送)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한일합병 성토문을 작성해 국내에 전달하려고 밀사를 파견하기도 했으며, 합병 반대 집회를 개최하려다가 발각되어 20여 일 동안 경찰의 심문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그에게는 ‘잦은 철식폐면(掇食廢眠)으로 형용이 초췌하고 심신이 찢기는 듯한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일본 순사에 의해 일동일정을 감시 당하는 처지에 몸의 병까지 겹치면서 자신과 조국의 비극적 운명 앞에 통곡하는 날이 많았다. 그 와중에 또, 주일 전권공사관(駐日專權公使館) 뜰에 서 있던 깃대가 거센 비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깃발을 매다는 ‘노대 고목(老大高木)’으로 만든 그 깃대는, ‘우리 4천 년 역사를 대표하고 우리 2천만 동포의 영예를 드날린 독립 전권공사관’의 큰 깃발을 거는, 그야말로 독립 국가의 상징물이었다.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침탈된 1905년 겨울에 조민희(趙民熙) 공사가 쓸쓸히 본국으로 돌아가긴 했으나, 그래도 그 빈 뜰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날 일기에는, 쓰러진 깃대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호소하는 듯, 원망하는 듯 더욱 처량하게 느껴져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중략>

5, 6월에 피는 은방울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길을 멈추고 앉아서 넓은 이파리를 들추지 않으면 그 순백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작년에 이준익 감독이 은방울꽃 같은 박열(朴烈)을 드러내 보여주기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 수 없었듯이, 조소앙 선생이 지은 독립운동가들의 전기집 《유방집(遺芳集)》에도 독립의 밀알이 된 꽃다운 인물들이 숨어 있다. 그 중에 우리는 과연 몇 분의 이름과 행적을 알고 있을까? ‘유방(遺芳)’이라는 책이름처럼 그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략>     

이 기 찬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문헌번역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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