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 관리자
  • 승인 2008.04.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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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쏟아내는 73세 ‘대박 메이커’

한때 우황을 고르는 데 최씨 고집을 고수하며 최상품만을 고른다는 우황청심환 CF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최수부 회장. 한방의 과학화를 창업이념으로 1963년에 광동제약을 설립한 최 회장은 지난 45년 동안 독창적인 의약품 개발과 우수한 기술도입을 통해 국민보건과 삶의 질 향상에 전력을 다해 왔다. 최근 ‘비타500’과 ‘옥수수 수염차’를 개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는 최 회장을 광동제약 사옥 회장실에서 만나 73살이 된 지금도 젊은이들을 능가하는 왕성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며 경영 일선에서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타 500’이어 ‘옥수수 수염차’도 히트
 세련됨-익숙함 조화시킨 최씨고집 경영
‘우황청심환’ 모델 출연 소비자 신뢰쌓아

 

한방감기약 ‘광동탕’과 동의보감 처방의 ‘광동우황청심환’은 광동제약이 설립된 이래 수십 년간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2001년에는 마시는 비타민C인 ‘비타500’을 출시해서 비타민음료 시장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고, 한방에서 전통적으로 부기 제거와 이뇨효과에 좋다는 옥수수수염을 사용한 ‘광동 옥수수 수염차’로 또다시 제약사로서 절정의 성장기를 맞고 있다.


이같이 광동제약의 새로운 전성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가 창업주 최수부 회장이다. 히트상품인 ‘비타500’과 ‘옥수수 수염차’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도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가운데 나온 결과라고 한다. 이것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광고문구 그대로 최씨 고집 욕심일까, 아니면 아직도 번뜩이는 사업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일까 

 

최수부 회장은 “아이디어라기보다 열성적으로 일하고, 동업계 경쟁사들보다 앞서가려는 생각으로 노력하면서 생긴 것입니다”라며 “앞서가려면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정보를 입수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 크게 히트를 친 ‘옥수수 수염차’도 그렇게 해서 개발했다.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마케팅 관련 담당자들을 지휘해 히트작품을 탄생시킨 최 회장의 표정에 아직도 진지함과 일에 대한 열정이 엿보인다. 제품개발을 하던 때 최 회장이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광동제약을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최수부 회장은 1936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났다. 철공소를 운영하던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했으나 일본의 학교생활은 그리 편치 않았다. 조센징으로 놀림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데 해방 뒤 귀국해서는 더욱 생활이 어려웠다.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모른다고 이른바 ‘쪽바리’라고 놀림을 당해 고통스러웠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돼 학교를 다 다닐 수 없어 12살에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 다닌 이력이 일본 소학교 2년, 한국 초등학교 2년에 불과하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군에 입대할 때까지 그는 이런저런 장사를 배웠고, 군대에서 제대한 뒤에 고려인삼산업사에서 ‘경옥고’ 외판사원을 하면서 사업수완을 익혀나갔다.


영업사원으로 열정을 가지고 일한 그는 3년 동안 모은 종자돈 300만환으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창업을 했다. 대지 87평, 건평 30평짜리 집을 사서 뒤편에 가건물을 짓고 경옥고를 달일 수 있는 가마를 설치했다. 광동제약은 그렇게 소박하게 출범했다.


하지만 최수부 회장의 광동제약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다. 한방의 과학화를 모토로 내걸었지만 1960년대나 1970년대의 우리나라 산업·의료과학 시설이 그것을 뒷받침할 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서울 시흥동에 제약회사의 면모를 갖춘 공장을 건설한 뒤부터였다. 광동쌍화탕, 우황청심환도 이 공장에서 만들었다.


그 뒤로 한방의 과학화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뚜렷해지면서 광동제약이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광동제약이 생산하는 주요제품은 쌍화탕류, 우황청심환, 항생제, 전문치료제 일반의약품, 비타500, 광동 옥수수 수염차 등 400여종에 달한다.


광동제약의 이 같은 성장이 의미가 있는 것은 전통, 익숙함, 오래됨의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첨단 과학과 조화를 이뤄 현대 소비자들의 심금에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달리 말해 나이든 노인, 오래된 집, 묵은 김치가 새로운 가치로 평가받으면서 각광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흔한 광고문구가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전통 한방을 고수하면서 그것을 최첨단 과학과 접목시키고, 현대의 세련된 이미지로 재탄생시킨 것은 최수부 회장이 그만큼 열린 마인드, 젊은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 한방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인데 어떻게 비타민 음료를 개발했는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에 대한 생각, 일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큽니다. ‘비타500’을 개발한 것은 비타민C가 인체에 좋다는 말이 상식처럼 된 데서 시작합니다. 많은 세계 석학들이 몸에 좋다고 발표를 했지요. 과립이나 정제로, 의약품으로 많이 복용해 왔지요.

 

오랜 기간 동안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소비자가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맛을 잘 내서 건강드링크로 개발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지요. 알다시피 비타민C는 시고 맛이 없어 먹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것을 맛있고, 마실 때 목도 시원해지게 해보면 어떻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착상을 해서 한 8개월 정도 제품개발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 맛이면 되겠다, 싶었을 때 제품을 내놨습니다.

 

- 한방의약, 생약 성분 등은 자연친화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이 제품이 히트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데.


맞습니다. 비타500의 성공은 차별적인 마케팅 활동도 한몫 했습니다. 비타500은 방부제와 카페인이 없습니다. 이것이 시대적인 트렌드인 웰빙 붐과 어울렸고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약국유통 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편의점, 할인점과 더불어 사우나 및 골프장 등으로 유통 채널을 다양화 한 것도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손쉽게 마실 수 있는 비타민C라는 애초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옥수수 수염차를 개발한 뒷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예로부터 옥수수 수염은 한방에서 이뇨작용과 부기제거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착안했습니다. 전통적인 옥수수차의 구수한 맛과 옥수수 수염의 기능성을 가미해서 녹차를 친근하게 여기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차 음료로 개발한 것입니다. 여기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V라인 얼굴’이라는 말을 붙이니 아주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음료제품이 됐습니다.

 

- 한방의약품과 함께 한 세월이 45년인데, 회장님이 특별히 드시는 약이 있는지 


봄가을로 한 제씩 지어먹고 있습니다.
 
- 한방의약품 제약회사 회장님으로써 노인들께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혜를 빌려주신다면 


다들 비슷한 생각이겠지만 연세 드셨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까운 산을 찾아 등산도 하고 운동도 계속하는 마음을 가져야 젊어지고 건강을 유지합니다.

 

- 어르신들이 약을 싸게 자실 수 있는 무슨 비결이 없을까요 


한약을 드시겠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봄가을로 경동시장에 가서 한의사가 있는 건재약방을 찾아보시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어디어디가 아픈 것 같은데 좋은 처방을 내려주세요, 해가지고 다섯 제 분량의 당귀, 작약, 백봉령 등을 삽니다. 반근, 300g 정도씩입니다.

 

그것을 지어서 집에 두고 봄에 2근, 가을에 3근 이렇게 집에서 직접 드시면 보약을 드시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실비 금액으로 몸에 윤활유를 치는 것처럼 활기가 돌고 원기가 북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 광동제약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설립 초반에 발전이 더디고, 한창 잘 나가던 때에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들에게 조센징이라고 이지매를 당했고,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 못하니 쪽바리라고 놀림 받았습니다.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소년 가장으로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일선에 나가 별 경험을 다 하고 그러다 보니 참고 적응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쇼크를 받는다고 낙심하거나 사기 죽는 쪽으로 생각을 안 했습니다. 오히려 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재충전하고, 내가 발전할 쪽으로 간다, 발전하는 방향으로 간다, 이렇게 건전한 쪽으로 소화했습니다. 이런 게 아마 내 장점인 것 같습니다.

 

- 웰빙이라는 말은 젊은이들에게 어울립니다. 서양사람들 생각도 반영돼 있습니다. 그런데 한방의약품 인생 외곬으로 살아온 회장님이 젊은 사람들의 성향을 체크하고 사회 분위기를 꿰고 계십니다. 젊은 사람들처럼 생각하시는지.


우리 회사는 제조업체입니다. 한방의약품을 만들지만 노년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자라가는 사람들까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또 특별한 이유를 들자면, 한 5년 동안 교육대학교(광동제약 사옥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와 맺은 자매결연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를 진행했어요.

 

그런 것도 우리 회사가 젊은 사고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또 우리가 진행하는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고, 행사에 참석한 경험을 갖게 해 어릴 때부터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으면 제품에 대한 것은 물론 품질, 브랜드 인지도까지 높아져서 세상 끝날 때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품개발을 할 때 젊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을 한다면 그만큼 확산이 빠릅니다. 

 

- 경영 일선에 계시는데, 앞으로의 목표와 꿈이 있다면.


기업은 부지런히 제품개발해서 정성스럽게 우수한 상품을 만들고 장사 잘해서 세금 낼 만큼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실업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이자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광동제약의 우황청심환으로 심장 질환을 고치고, 경옥고로 체질을 개선하고, 쌍화탕으로 감기 몸살을 치료하고 비타500과 광동 옥수수 수염차로 건강을 유지시켰으면 하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내 갈길만을 걸어왔습니다. 지금의 성과와는 별개로, 정직과 신뢰를 최선으로 여기며 고집스럽게 한 길을 걸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이 정신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직접 우황을 고르고 사향을 선별합니다.

 


 

최수부 회장은…
1935年 일본 규슈 출생
1963 광동제약 설립
한국제약협회 이사
한국 표준협회 이사
의약품수출입협회 감사
한국 한약 제조협회 고문
구로구 상공회 회장
고려대경영대학원 수료
서울대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연세대언론홍보대학원 수료
모범 납세자 국세청장상 수상


박병로 기자 ropark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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