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최인훈의 문학세계…문학작품을 썼다기 보단 ‘살았던’ 한국 문학의 거목
타계한 최인훈의 문학세계…문학작품을 썼다기 보단 ‘살았던’ 한국 문학의 거목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8.03 13:52
  • 호수 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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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이념 대립의 상처‧고뇌 다룬 ‘광장’, 문인들이 뽑은 최고의 한국소설

‘회색인’,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 통해 꾸준한 실험정신 드러내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7월 23일 타계한 최인훈 작가는 1960년 '광장'을 발표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7월 23일 타계한 최인훈 작가는 1960년 '광장'을 발표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한국전쟁이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유엔 사이에 체결된 협정에 따라 무기한 휴전에 들어갔다. 남북 양쪽은 전쟁 기간 동안 잡아두고 있던 포로를 교환하면서 그들에게 남과 북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했다. 포로로 잡힌 ‘이명준’이란 남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짧고 굵게 이렇게 말했다. 

“중립국.”

물론 이는 실제 상황은 아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광장’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1960년 발표된 소설 속 이명준이 내린 결단은 당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현재까지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고전이 됐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최인훈 작가가 지난 7월 23일 별세했다.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향년 84세로 타계했다. 

1934년 두만강 변의 국경도시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하에서 식민지 교육을 경험하고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부산행 해군함정에 몸을 실었다. 1952년 부산에 옮겨와 있던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해 이듬해 대학을 따라 올라가 서울에 정착한다.

대학 재학 중 자신의 첫 소설에 해당하는 ‘두만강’을 집필하고, 1959년 군복무 중 ‘자유문학’ 10월호와 12월호에 단편 ‘GREY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발표하며 등단해 본격적인 문학세계를 전개한다. 다채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 평론, 에세이들을 발표하며 한국 현대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언제 읽어도 여전히 낡지 않은 문제의식과 세련된 문체는 많은 후배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광장’은 완벽을 추구하는 작가가 스스로 8차례나 다듬고 개작해 한국문학사상 가장 많은 판본을 지닌 작품으로 알려졌다. 

내용은 이렇다. 해방된 조국 남쪽에서 대학을 다니던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온 일로 불온인물로 낙인찍힌다. 떠밀리듯 월북을 감행한 명준은 그곳에서 기자가 되지만, 인민의 공화국을 표방하면서 실상은 달랐던 북쪽의 속내에 커다란 환멸을 느낀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부상을 입고 입원한 병원에서 만난 발레리나 은혜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명준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스크바로 떠나 그를 절망케 한다. 은혜가 모스크바로 떠난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명준은 전세가 기울어가는 낙동강 전선에 인민군으로 투입된다. 명분을 찾지 못하는 전쟁에 회의하던 명준은 그곳에서 은혜와 재회, 처음으로 완전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은혜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고 명준은 포로가 된다. 

이후 동료 석방 포로들과 함께 인도행 배를 탄 명준은 자신이 탄 배를 계속 따라오는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고 충동적으로 바다에 투신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광장은 출간 이후 현재까지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있다. 2004년 국내 문인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인훈은 ‘광장’ 말고도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총독의 소리’ 등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을 꾸준히 발표했다. 박태원의 단편을 패러디한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문학사에 관한 그의 예민한 감각의 결정체라면, 희곡집과 산문집은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정신과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1970년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태풍’과 1984년에 발표한 짧은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오랜 침묵을 지키던 그는 1994년 두 권짜리 장편 ‘화두’를 내놓으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나’의 고백체로 된 소설은 해방 뒤 북한에서 다녔던 중·고교 시절, 전쟁 중 남으로 피난 와서 대학에 들어가고 군에 복무하다가 소설가로 등단한 과정, 세계 문명의 중심지인 미국에 머물며 변방의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왜소한 자의식, 소련의 허무한 몰락을 바라보는 반성적 지식인의 사유,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소설을 쓰기까지의 고뇌와 모색을 담고 있다. 

‘화두’ 이후 다시 오랜 침묵에 들었던 그는 2003년 단편 ‘바다의 편지’를 발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백골이 된 채 바닷속에 누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으로 짐작되는 인물의 독백을 통해 민족사와 인류사의 기억과 전망을 한데 버무린 실험적인 작품이다.  

문학계는 그를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신이 죽은 시대,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신비주의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론으로 개발한 내면성 탐구의 절정에 선 작가”, “문학작품을 썼다기보다 차라리 ‘문학을 살았다’라는 표현에 적실한 작가”로 평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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