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 ‘뷰티풀 라이프’…“나이를 먹어도 표현법만 다를 뿐 사랑은 변치 않아”
대학로 연극 ‘뷰티풀 라이프’…“나이를 먹어도 표현법만 다를 뿐 사랑은 변치 않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8.24 14:05
  • 호수 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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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노년, 중년, 연애시절로 거슬러 가면서 부부의 사랑 사실적 묘사

내 이야기 같은 친근한 캐릭터와 상황 설정, 대사 등으로 공감 높여 

노년, 중년, 연애시절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진행되는 이번 작품은 나이가 변해도 표현법만 달라질뿐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노년, 중년, 연애시절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진행되는 이번 작품은 나이가 변해도 표현법만 달라질뿐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1999년 개봉한 ‘박하사탕’은 흥행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이창동이란 이름 세 글자를 한국영화계에 선명하게 새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나 돌아갈래’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작품은 순수했던 한 남자가 추악하게 변하는 과정을 ‘거꾸로’ 담았다. 즉, 영화의 첫 장면엔 타락한 40대 남자를 보여주고 시간을 점차 거슬러 올라 영화 마지막엔 순수했던 시절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본성을 탐색했다. 

지난 8월 21일 또 다른 ‘박하사탕’이 서울 대학로 JTN아트홀 4관 무대에 올랐다. 오픈런(끝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공연)으로 진행되는 연극 ‘뷰티풀 라이프’ 이야기다. ‘박하사탕’이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면 ‘뷰티풀 라이프’는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작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황혼기, 서로 치고 받으며 결혼 생활의 갈등이 정점에 달하는 중년 시절,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첫 만남과 연애 시절을 찬찬히 거스르며 보여준다.  

조명이 켜지면 무대 위에 소박한 가정집이 등장한다. 70대 노부부만 살고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가정으로 두 사람이 함께 살아 온 세월만큼 바랜 벽지와 오래된 액자는 낡았다는 느낌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이어 등장하는 노년의 춘식과 순옥은 시작부터 투닥거린다. “아니 이 할망구가 전화받는데 눈도 안보이면서 티비를 크게 틀고 난리야”라며 타박하는 춘식에게 순옥은 밀리지 않고 “소리로 들으면 되는데 왜… 전화 안들리면 당신이 방 안에 들어가서  받으면 되지”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겉으로는 늘 싸우는 것 같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춘식은 눈이 멀어가는 순옥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속앓이를 하고 순옥 역시 미안한 마음뿐이다.

시간은 거슬러 이들의 40대로 간다.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춘식은 철이 없다. 순옥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남편은 이를 모르고 온통 관심은 낚시에 가 있는 것이다. 친정에 한 번만 같이 가자는 그녀에게 춘식은 친구와 낚시 약속이 있다며 무시해버린다. 아내는 내가 달라진 게 없냐, 왜 그렇게 관심이 없냐며 이야기 물꼬를 트려 하지만 서투른 시도에 뜻대로 풀리지 않고 마침내 낚싯대를 손질하는 남편을 향해 억눌렀던 감정을 뿜어낸다. 

다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풋풋했던 두 사람의 20대 시절을 보여준다. 사랑이 서툰 남녀가 오해로 인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과정을 재기발랄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인생의 주요 순간을 3개로 나눠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적신다. 나이대별로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전체적인 스토리나 캐릭터 설정 등은 드라마를 통해 한 번쯤은 봤을 법하다. 춘식의 캐릭터가 그렇다. 아내에게 툴툴 거리기만 하고 무관심한 척 하는 춘식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남자다. 다만 모든 남편들이 그렇듯 속으로는 아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순옥 역시 바가지를 긁지만 남편에게 헌신한다.

주요 사건도 마찬가지다. 서로에 대한 무심함, 시댁·처가와의 갈등, 뜻대로 안 되는 자식까지 누구나 한 번은 겪어봤거나 집에서 들어봤음직한 내용들이다. 한바탕 고성이 오간 후 밖으로 나가버리는 춘식과 바닥에 주저앉아버리는 순옥의 모습은 어느 집의 부부싸움을 그대로 똑 잘라 가져온 듯 현실감이 넘친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선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결말은 예측이 되지만 부부 또는 연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상황을 통해 진부함을 감동으로 바꿔놓는다.

작품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춘식과 순옥 부부의 인생을 통해 보여준다. 오해로 다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굳은살이 생기듯 부부애는 점차 단단해진다.  

연극의 백미는 생생한 대사다. 실제 부부의 대화인 듯 현실감 넘치는 대사는 춘식과 순옥의 삶을 평범한 모든 이의 삶으로 만든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김건모의 ‘잔소리’ 등 상황에 맞는 배경음악도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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