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없는 국회, 이대로 좋은가’ 좌담회 지상중계
‘노인 없는 국회, 이대로 좋은가’ 좌담회 지상중계
  • 황경진
  • 승인 2008.05.19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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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백세시대 공동주최

“정치권 노인홀대 맞서 노인권익운동 세력화 꼭 필요”

노인사회의 힘이 결집된, 거센 노인권익운동이 펼쳐질 전망이다. 국내 주요 노인단체 대표들이 ‘노인권익’이란 하나의 목표 아래 힘을 모으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직화, 세력화 된 ‘그레이 파워’(gray power)를 바탕으로 노인대표를 국회로 보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급진적인 의견도 제시됐다. 한마디로 ‘노인권익은 노인 스스로 쟁취하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대한노인회와 본지가 지난 13일 오후 2시 30분부터 대한노인회 중앙회관에서 2시간여 동안 주요 노인단체 대표들과 관련 학자를 초청, ‘노인 없는 국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마련한 좌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루어진 좌담회를 지상중계한다.

 


<사진설명> 대한노인회와 본지가 공동주최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조남범 회장, 이달형 회장, 차흥봉 명예교수, 이 심 발행인, 안필준 회장, 황진수 교수, 서경석 회장, 주명룡 회장.


안필준 : 노인인구가 500만명으로 상당한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난 18대 총선에서 각 정당은 직능단체대표로 노인 비례대표에 대해 서류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권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인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흥봉 : 지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 노인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고향인 경북 군위·의성·청송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노인 정치현실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선 우리나라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다. 노인은 ‘물러나고, 그만둬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하고, 정치 현실에 그대로 반영된다. 정당의 공천, 비례대표 선정에서도 나이는 부정적 역할을 했다. 정치 현실에서도 나이가 들면 그만둬야 한다는 부정적 현실이 존재했다. 따라서 노인 권익운동을 통해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 노인 유권자들이 노인복지 정책 공약에 대해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출마해 노인복지정책 공약을 내세웠지만 그것이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노인복지정책보다 지역감정과 선호하는 정당 등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황진수 : 집단이익에 대한 목소리가 매우 높다. 노인집단은 목소리를 내지 않은 집단이다.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집단의 주장을 균등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노인은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도 은퇴 후 집단 동일성을 창출하지 못했다. 노인권익운동은 노인 자신과 사회 기강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정치적 현실과 노인권익운동을 같이 묶어 다뤄야 한다.

 

주명룡 : 나이 든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 지난 2003년, 노인단체가 힘을 합쳐 청와대와 정부에 고령사회위원회 출범을 강력히 요구하는 단체행동을 통해 목적을 이뤄낸 바 있다. 이제 이 같은 시도를 다시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단체들이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어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순수한 비정부기구(NGO)가 돼야 한다. 노인단체 대표가 자주 모여 공동의 화제를 나누면서 비정부적인 기구가 됐으면 좋겠다.

 

조남범 : 누군가 도움을 드려야 하는 어르신들은 자신의 의사표현을 직접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가노인복지의 현장에서는 일반 어르신들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어르신들의 신체 및 정신적 권익을 누가 옹호해 줄 것인가 하는 과제가 있다.
또한 평소 어르신들이 주장하는 이슈가 보편타당해야 한다. 젊은이들과 예비노년층이 보편타당한 이슈에 대해 공감하고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권익’은 추상적이다. 정치적인 구체화가 필요하다.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논리와 이슈를 개발해 노인 당사자는 물론 젊은이들도 ‘나중에 노인이 됐을 때 나도 해당되는 문제’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경석 : 노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구분 짓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사회구조적 병폐에 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65세 이상이면 노인이 돼야 한다. 고령화사회는 사회 전체가 늙어간다는 개념인데 단순히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회가 노인을 배려하지 않으니, 사회적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도 노인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


노인이 대접받기 위해서는 우선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에서 노인과 노년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지 않으면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고착, 반복된다.


또한 국민인식이 부정적인 이유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국민들이 노인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노인 스스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없어야 한다. 어르신 개개인은 매우 훌륭한 분들이지만 집단화되면 이기적 성향을 띄며, 사회적으로 부담되는 집단으로 변모하는 경향이 있다. 우선 사회가 인정하는 집단이 돼야 한다.

 

이달형 : 노인권익운동에 있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옳지 않다. 노인 스스로 권익을 찾아야 하며, 누가 챙겨줄 것이란 기대를 버려야 한다. 지난 2002년 ‘노인권익보호당’(노권당)을 창당했을 당시 65세 이상 유권자가 400만명이었다. 예비 노년층을 더하면 700만명에 가까웠다. 70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10%만 지지해도 최소한 4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다. 숫자 계산은 잘 했지만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지방순회 유세에서 노인 유권자들은 대부분 노권당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홍보부족을 뒤늦게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옥같은 정책들이 나와도 노인 스스로 꿰야 한다. 정당에 노인비례대표 선출을 요구하는 것은 공염불이다. 노인이 스스로 머리를 깎아야 할 때다.


노인도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지난 2004년, 24년 만에 의회에 진출했다. 비례대표가 8명이었다. 이제 노인들도 많이 깨우쳤다. 2002년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노인단체가 힘을 모으면 최소 5~6명의 국회의원을 낼 수 있다. 2012년에는 가능하다고 본다.

 

안필준 : 대한노인회장으로서 지난 5년 동안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이지 말고 노인복지 잘하겠다는 후보를 지지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연과 지연, 혈연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인권익운동은 특정한 기구를 만들고 여론을 환기시켜 ‘노인복지 잘 하는 사람을 지지한다’는 목표를 두고 가야 한다.


이번 총선의 비례대표 선정과정을 보면 정치권이 노인을 얼마나 푸대접하는지 알 수 있다. 노인대표 20여명이 비례대표를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비례대표 선정과정에서 인품과 사회적 기여도를 떠나 70대 이상 고령자는 원천적으로 제외됐다. 장애인, 약사, 간호사 대표는 비례대표가 됐는데 노인단체 대표는 제외됐다. 한나라당 최고위 당직자가 “노인정책 잘하고 있는데 무슨 비례대표가 필요합니까”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제 노인 스스로 권익을 찾아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노인권익운동에 앞서 노인 스스로 마음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또한 대한노인회를 비롯해 노인종합복지관협회, 재가노인복지협회, 은퇴자협회, 노인복지단체연합회 등 노인단체가 한 목소리로 노인권익을 주장해야 한다.

 

이 심 : 이스라엘에서는 현재 81세인 라파엘 아이탄이라는 노인이 만든 노인정당 ‘길’(GIL)이 지난 2006년 3월 실시된 이스라엘 총선에서 전체 120석 가운데 7석을 차지하며 정계 진출에 성공했다. ‘길’은 이스라엘 인구 680만명 가운데 10%가 넘는 75만명의 은퇴자를 대변했으나 퇴직연령이 되지 않은 은퇴 준비층으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 정당은 ‘노인 권익 증대’와 ‘노인에 대한 존경을 되찾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큰 호응을 받았고, 이색적이고 열정 가득한 선거 캠페인을 통해 노년층은 물론 젊은층까지 성공적으로 공략했다. 


이스라엘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도 많이 변하고 있다. 90세가 돼도 인터넷을 배우며 공부하는 시대다. 과거, 경로당에는 무학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경로당이 생산적이고 활기찬 노후생활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경로당을 활용해 노년세대에 정치적 자신감을 심어 준다면 노인권익운동은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주명룡 : 우선 노인이 세력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미국, 영국의 노인단체는 집단의 목적과 요구(주장), 행동을 체계적으로 실천한다. 적어도 집단의 목적과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이 귀 기울일 것이다. 개별 노인단체의 목적뿐만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고 장기적인 계획 아래 지속적인 모임을 통해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몇몇의 그룹이 모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킨 경우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차흥봉 : 대한노인회가 다른 노인단체와 공동전선을 펼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것이 바로 노인단체의 정치적 액션이다. 결국 정치권에서 노인권익을 생각하게 하려면 노인단체가 정치세력화 해 행동으로 뭔가 보여줘야 한다. ‘그레이 파워’(gray power)를 조직화, 세력화해야 한다.

 

서경석 : 전국 노인복지관에 등록된 회원이 80만명이다. 이 분들은 60세 이상 건강한 노년세대이면서 가정에서도 권위를 가진 분들이다. 하지만 대규모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들의 생각을 전달할 통로가 없다는 현실적 문제점이 있다. 노인단체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 같은 계기가 마련된다면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도 적극 동참하겠다.

 

주명룡 : 이명박 정부는 고령사회 대비책, 노인복지를 잃어버린 듯 하다. 최근 청와대가 미래사회위원회를 결성한다는데 노인단체대표, 노년학 교수 등은 제외됐다. 노년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정부와 여당에 노인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시급하다.

 

황진수 : 일본 전국고령자사업단은 노인취업에 앞장섰고, 미국은퇴자협회는 타운젠트(Townsend) 운동(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생활의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정상적인 삶은 개개인의 가정에서 보장돼야 한다는 사회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단체들이 서로의 이익과 갈등을 봉합하며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진보적 성향의 민주화운동 단체의 목소리가 컸고, 보수적인 성향의 노인단체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는 관변단체들이 정부지원에 발목이 잡혀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노인권익운동은 다음 네 가지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첫째, 이슈를 개발해 단체의 견해를 피력한다. 둘째, 노인들과 정치세력을 연계, 정당에 편입시켜 정권을 창출하고 노인대표가 권력층에 들어간다. 셋째, 국민과 노인단체를 의식화시켜 목표를 달성한다. 넷째, 자체적으로 정치세력화한다.


종교단체를 비롯해 여성단체와 지역사회단체 등은 스스로 의식화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노인단체는 아무 노력이 없었다. 배를 만들어 진수식을 갖고 항해시켜야 하는데 이제 배를 만들자고 협의하는 과정이다. 앞으로 험난하고 먼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도 하루아침에 노인권익을 쟁취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도 노인당을 만들어 5명을 의회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이제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노인들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심 : 백세시대은 노인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신문이다. 백세시대이 중심축이 돼서 노인권익운동을 추진한다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진수 교수의 지적대로 단기간에 성과를 얻으려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인과 노인단체가 뭉치면 뭉칠수록 더 큰 권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흥봉 : 노인의 정치세력화에 있어 대한노인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한노인회가 여타 사회단체와 연계하는데 앞장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 당시 대한노인회가 나서지 않았다면 위원회 구성도 무산됐을 것이다. 대한노인회가 나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다른 단체가 돕는 형태가 좋을 듯하다.

 

이달형 : 노인단체의 규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별도의 통합단체를 설립한다면, 강성이 있는 권익단체를 만들어야 한다.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 고운 이야기로는 큰 성과를 얻기 어렵다. 말로는 다했다. 이제 ‘우리 밥은 우리가 찾아 먹는다’고 강하게 나서야 한다.

 

주명룡 : 사회변화 속에서 제도를 개선하면 복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노인단체들이 순수한 비영리기구(NGO)가 되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 노인단체간 벽을 허물고 지속적으로 소통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면 된다.

 

조남범 : 무엇보다 특정 단체에 한정된 이슈는 공감대 형성을 저해한다. 전체 노인사회와 노인단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슈 개발을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이 조직화의 원칙이 되길 바란다. 노인권익 옹호를 위한 사회단체를 만드는 것과 함께 무엇이 이슈가 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정리=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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