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 율암그룹 회장(대한노인회 前 중앙회장)
백창현 율암그룹 회장(대한노인회 前 중앙회장)
  • 관리자
  • 승인 2008.05.20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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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노인홀대 행동으로 보여줄때"

지난 3월 19일 대한노인회 창립 39주년을 맞아 대한노인회 고문인 백창현 율암그룹 회장을 비롯해 오늘의 노인회로 발전시킨 노인회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여 간담회를 갖고 기념식수를 했다. 이날 화제가 된 것은 단연 노인 몫의 국회비례대표가 없다는 사실.  백창현 회장이 제18대 국회의원 총선 때 모 정당의 노인 몫의 비례대표후보에 올랐던 터라 아쉬움과 함께 국회 직능대표 구성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백창현 회장을 만나 노인 몫의 비례대표가 없는 작금의 노인사회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O 창립 39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오찬을 하고 울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울분을 노인회의 정치세력화 에너지로 만들자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노인 몫의 비례대표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통탄할 일입니다. 자다가도 일어날 일이에요. 전국 평균 투표율이 46%에 불과하고 노인투표율은 어느 세대보다 높습니다. 노인표가 국회의원 당선과 낙선을 좌우하는 이런 때에 노인 몫의 대표가 없으니 통탄할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사실 장애인, 여성 등 다른 분야의 비례대표는 공천순번까지 지정해 의무적으로 할당하고 있다. 법정 노인 인구가 500만명, 대한노인회 회원수는 대한노인회 집계로 260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공천 신청 서류를 접수했습니다.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활동할 복안을 마련했던 것으로 압니다.


안필준 회장이 통합민주당에서 직능대표를 모집하니 서류를 내보라고 해서 냈습니다. 나는 원래가 여당 성향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선거운동도 했고, 김영삼 대통령 때 서울시의회 의장도 역임했습니다. 정치적 계보를 말하면 민주당이지요. 강남구 지구당 위원장도 했습니다. 아무튼 노인 몫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 이틀 정도 바쁘게 서류를 준비해서 냈습니다. 고령이라 공천이 어렵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지만 솔직히 아쉽지요.

 

O 국회에 나간다면 정치를 하실 수 있지요 


안 회장 말씀이 기어코 국회에 보내겠다고 합니다만, 말씀은 고마운데 내가 이제 80을 넘었습니다. 그러고 건강해 보이긴 한데 작년에 아파서 크게 혼났습니다. 78킬로그램 나가던 몸무게가 63킬로그램까지 줄었으니까요. 내가 직접 하기는 어렵고, 기회가 된다면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국회에 보낼 후진을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당을 못하면 정치연구소라도 개설하자고 합니다. 백 회장님께서 주도적으로 참여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그런다면 뜻있는 많은 어르신들이 동참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다른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혼자 살다가 불우하게 세상을 뜨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노인회에는 부자 노인이나 경륜이 있는 노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다 보니 결집력이 약해서 직능대표에 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에 노인정당이 만들어졌던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허여튼 꺼머튼 깃대가 꼽힌다면 그런 뜻있는 노인들이 많이 모일 것입니다. 누가 깃대를 꼽느냐 이것이 문제이지 계기만 되면 다 모일 것입니다.

 

나만 해도 재산의 반은 자식들한테 넘기고 반은 아직 갖고 있습니다. 양보심 때문에 물러나 있으나 응집력을 살리고 깃대를 꼽는다면 나 역시 역할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O 과거 노인대표를 국회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셨는데.

맞습니다. 사실 노인 몫의 비례대표를 국회에 보내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1991년 11월, 대한노인회 이사회 결의에 따라 ‘노인직능대표국회보내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병하 회장을 노인대표로 모시기로 했는데, 그때 내가 추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보내기도 했으나 노인사회의 염원을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 네 번의 국회가 구성되고 있습니다.

 

O 서울시의회 의장을 역임한 경험에 비춰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30여년 만에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됐다 하여 기대가 컸습니다. 당시 나는 노인회 회장단의 일원으로 1992년 치러진 서울시의회 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돼 서울시의회 의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이병하 회장을 노인 몫의 직능대표로 국회에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갖고 있던 터여서 적극 나섰습니다. 복지정책의 추진과 시행이 자치단체 소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서울특별시노인복지기금 설치 및 운용관리조례’안을 발의했습니다. 노인복지기금을 조성하고 운용할 수 있는 조례로, 당시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 조례안을 벤치마킹했습니다.


당시 이 조례에 따라 서울시에서 20억원에 이르는 복지기금을 모금했다. 서울 외 전국 지자체에서 131억원의 기금을 모금해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 기금의 일부가 지자체에 아직 남아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백창현 회장은 짐작하고 있다. 백 회장은 특히 대한노인회 회장에 올랐던 1994년도에는 기초자치단체인 시겚틒구의회 단위로 1000억 원의 기금 조성을 목표로 조례제정 및 기금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부에서는 저항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에도 백창현 회장은 노인회장으로서, 서울시의회 의장으로서, 전국 지자체의회 의장단 의장으로서 전국을 돌았다. 몸이 좋지 않았으나 광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노인이라고 괄세 받지 않으려면 노인회 기금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당시 노인 표가 기초의회 선거, 단체장 선거에서 맹위를 떨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인복지 조례안이 급속히 확산됐던 것.


그러나 행정당국에서 노인복지기금이 별도로 운용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장애인 미망인 여성 등도 있는데 노인복지만 조례제정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인복지기금을 사회복지기금으로 돌리자는 방안이 나왔고, 사회복지기금으로 전환하더라도 노인복지기금 지분을 상당히 배려해 주겠다는 제안이 나왔다. 서울시의회에서도 그런 조건으로 조례안이 재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O 각 시 및 구의회에 대한노인회 시군구지회장이 도전하고, 광역시도의회에 연합회장들이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습니다만.


지자체 조례를 제정하고 노인복지기금을 조성하는 과정을 보니 대한노인회 연합회장과 광역시도의장, 지회장과 시군구의회 의장의 관계가 아주 중요했습니다. 원만하고 협조적일 때 노인복지기금이 풍요롭게 조성이 되고 그렇지 못한 곳은 조례제정도 어렵고 기금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며칠 전 백세시대에도 기사화 됐다시피 노인표가 당락을 가르는 시대입니다. 연합회장, 지회장의 몫이 정말 큽니다. 해당 의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O 대한노인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얘기가 깁니다. 우선 노인대학이 한참 붐을 일으키던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습니다. 당시 선친께서 노인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논현동에 400평 터에 100평 건물을 짓고 ‘영동노인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성인교육회, 전국노인학교협의회 등 단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다 1981년에 이들 단체가 해체되면서 당시 보건사회부(현보건복지가족부) 산하 단체였던 대한노인회 중앙회 선임이사가 됐습니다.

 

그러다 교육분야를 담당하는 교육위원회부회장직을 맡았고, 제 10대 대한노인회 중앙회장이 됐습니다. 이규동 전회장이 대한노인회를 재탄생시키던 때에 대한노인회 중앙회 회장단에 이름을 올렸으니 인연이 오래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분들은 내가 대한노인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도 대한노인회 회장인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시장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노인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O 노인회 원로로서 현 노년세대가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고 평가하시는지 


일요일이면 모 백화점에서 식사를 합니다. 중국집의 간자장 해삼 이런 것을 먹는데 보면 노인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7~8년 전 외국에 다니면서 보면 가족들이 외식을 하면 반드시 머리가 흰 어르신들이 있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O 앞으로의 대한노인회, 노인사회의 과제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잘 하시지만, 나는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노인들이 손 벌리니까 괄세받는 것입니다. 투표권이 있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투표할 때 며느리나 자식 뜻에 따르지 말고 노인복지 아는 사람에게 투표해야 합니다.

 

국회나 지자체에서 그래야 노인복지기금도 충분히 확보합니다. 노인복지기금 관련 조례가 개정돼 일반사회복지기금으로 된 것이 지금도 나는 아쉽습니다. 이 점을 신문에서도 대서특필했으면 합니다.

 

O 최근 화성에 온천을 개발했는데.


경영이 쉽지는 않지요.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나는 운동 삼아 일을 합니다. 화성 온천개발 사업장에 가면 하루 6000보 이상 걷습니다. 그 일대를 선산으로 땅을 마련했던 것이 화성 시가 돼 웬만큼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오래 전 밤나무를 심은 것이 오래도록 지역 노인들의 소득원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온천은 1만평 부지에 4000평을 지었습니다. 스파와 허브, 참숯가마를 1년 365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오는 4월 25일에 오픈합니다. 하여튼 뭐든 서두르는 사람이 아니니 나는 경영도 천천히 합니다. 

 


박병로 기자 roparkk@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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