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일제의 유산 앞에서 느끼는 상반된 감정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일제의 유산 앞에서 느끼는 상반된 감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09 14:15
  • 호수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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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남녀 통해 이중적인 삶의 모습 그려

국내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급부상한 전북 군산근대문화유산거리. 일제강점기 당시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은 이 역사의 현장은 현재 관광지로 더 유명하다. 일제가 만든 근대건축물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일제를 비난하면서 수치스런 역사의 현장에서 웃고 떠들며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이 상반된 두 정서를 한 편의 로맨스와 버무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11월 8일 개봉했다. 지난달 폐막한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던 이번 작품은 빼어난 연기력으로 큰 사랑을 받아온 박해일, 문소리가 주연을 맡아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전북 군산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관광안내도를 보고 있는 윤영(박해일 분)과 송현(문소리 분)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국수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두 사람은 국수집 주인의 추천으로, 일본식 건물로 된 민박집을 찾는다. 사이좋은 부부 같은 윤영과 송현은 사실 연인도 아니다. 윤영이 한때 송현을 쫓아다녔지만, 그녀는 윤영의 친한 선배와 결혼했다. 

시간이 흐른 뒤 윤영은 송현이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됐고 용기를 내 다시 그녀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송현은 여전히 그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자폐증을 앓는 딸 주은(박소담 분)을 키우는 민박집 주인(정진영 분)에게 관심을 보인다.

저돌적인 윤영이 송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만 그럴수록 남편의 불륜으로 ‘돌싱’이 된 송현은 말없이 묵묵한 이 사장에게 더 끌린다. 여기에 주은이 윤영에게 관심을 보이며 네 남녀의 관계는 묘하게 꼬여만 간다.

일본동포와 중국동포는 100여년 전만해도 똑같은 조선인이었다. 다만, 현재는 완전히 다르다. 일본에 거주하는 이들은 ‘재일동포’라 부르는 반면, 중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작품은 일상 속에서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폄하하고, 차별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재일교포와 대비해 보여준다.

송현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평소 재중동포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와 권리 증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참석하는 중국동포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만 자신에게 ‘조선족 아니냐’라는 말을 건네자 불쾌감을 드러내는 이중성을 가졌다. 윤영도 마찬가지다. ‘조선족’에 대해 비하 발언을 일삼는 아버지가 못마땅하지만 정작 자기 집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가사도우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윤동주를 존경하고 일본 옥중에서 순국했다는 사실도 알지만 일본 문화를 찬양하는 송현, 그녀의 태도에 반박도 못한 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만행이 담긴 사진을 보는 윤영을 보고 있으면 우아하게 떠다니는 겉모습과 달리 물 아래에선 끊임없이 발길질하는 거위의 모순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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