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목숨 건 투쟁 끝에 탄생한 ‘우리말 큰사전’
영화 ‘말모이’, 목숨 건 투쟁 끝에 탄생한 ‘우리말 큰사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2.21 14:27
  • 호수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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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물 ‘판수’ 등 통해 ‘조선어학회사건’ 감동적 재현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다가 감옥에 가둔다. 일명 조선어학회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수많은 국어학자들이 고초를 겪었다.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큰사전’의 모태가 된 말모이를 만든 국어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단체다. 당시 학회는 잡지 ‘한글’을 발행하고, 큰사전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학회는 해산됐고 편찬 중이던 사전 원고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러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원고 뭉치가 발견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을 토대로 가상의 인물과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말모이’가 2019년 1월 9일 개봉한다. 작품은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는 경성을 무대로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우연한 기회에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역사와 언어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과정을 담았다.

극장에서 해고된 판수는 아들 학비 때문에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의 가방을 훔치다 붙잡혀 엉겁결에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에 투입된다. 학교 이사장으로 한글 교육에 앞장서다 친일파로 돌변한 아버지를 둔 정환은 언어에는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 믿고 동지들을 모아 사전 편찬에 인생을 건다. 

정환에게 판수는 눈엣가시였다. 범죄자인데다가 아무데나 침을 뱉는 그의 거친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비록 전과자였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판수는 학회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서히 한글을 읽히고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을 뜬다. 정환 역시 판수의 본심을 알게 되고 그를 동지로 인정하면서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창씨개명을 앞세운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학회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수와 정환을 포함한 학회 회원들은 말모이 작업을 끝내기 위해 전국의 교사들을 소집하는 비밀 공청회를 열게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 축은 판수의 ‘변화’와 정환의 ‘고집’이다. 판수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서민을 대표한다. 하루 벌어 먹고 살기 바쁜 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한글조차 배울 여력이 없던 그가 조선인으로 살아가나 일본인으로 살아가나 먹고 사는 게 힘든 건 똑같으니까. 이런 그가 한글을 배우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서서히 애국심을 키워가는 것이 이 작품의 첫 번째 포인트다. 

반면 정환은 일제의 압박에도 민족을 지키려했던 지식인들을 대표한다. 부유층 자제인 정환은 창씨개명만 하면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저항한다. 수많은 지식인이 변절한 가운데 그는 끝까지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도 보여준다.  

한글사전 제작과정도 흥미롭다. 판수가 내놓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팔도 사투리를 수집하고 공청회 과정을 거쳐 표준어를 하나둘 확정해나가는 과정은 웃음과 함께 벅찬 감동을 준다. 여기에 유해진, 윤계상 등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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