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쿠르스크’, 러 정부의 무능으로 산화된 해군 23명
영화 ‘쿠르스크’, 러 정부의 무능으로 산화된 해군 23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1.18 13:59
  • 호수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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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르웨이서 좌초된 핵잠수함 구조참사 다뤄

2000년 8월 12일, 러시아가 자랑하는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노르웨이 인근 바렌츠 해에서  군사 훈련 중 갑작스레 벌어진 내부폭발로 침몰한다. 당시 승선했던 해군 장병 118명은 끝내 바다에서 산화했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후 구조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는 국가의 위신이란 명목으로 영국 등의 구조 지원을 거절했다.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건 이후였다. 폭발 후에도 23명의 해군이 살아남아 잠수함 후미로 피신해 구조를 기다렸던 것. 

이 가슴 아픈 실화를 재현한 영화 ‘쿠르스크’가 1월 16일 개봉했다. 영화는 러시아 해군 장교 미하일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족과 장난을 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미하일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전우의 결혼식을 준비한다. 정부 지원이 끊겨 돈이 없었던 미하일과 대원들은 소중한 해군 시계를 맡겨 보드카 등을 마련해 축제의 분위기를 띄운다.

결혼식 다음날 이들을 실은 쿠르스크는 훈련을 위해 출항한다. 축구장 2개를 합친 것보다 더 길었던 초대형 핵잠수함 쿠르스크는 러시아 해군 북부함대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잠수함 내부에서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난다. 

이 참혹한 상황에서 후미에 있던 미하일 등 23명은 살아남아 가라앉은 쿠르스크 내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다. 침몰 소식을 접한 영국 해군 준장 데이빗 러셀(콜린 퍼스 분) 등 국제사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러시아 정부는 보안을 이유로 완강하게 거부한다.

작품은 미하일을 비롯한 생존자들, 미하일의 아내 타냐와 승조원 가족들, 생존자들을 구조하려는 영국군 준장 데이빗의 시선으로 전개하면서 쿠르스크호 침몰을 두고 벌어지는 내부와 외부 상황을 끊임없이 교차해 보여준다. 끝까지 국가를 믿고 서로 의지하면서 생존해 나가는 승조원들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의 무능한 구조 작전이 보여주는 대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익은 장면으로 다가온다.

구형 어뢰 탑재, 주먹구구식 운영, 정부의 무능함 등. 사태 수습에 급급한 당국은 피해자 가족들을 앉혀 놓고 진실을 숨긴다. 기술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구조 활동이 이뤄지지 않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원론적인 답만 늘어놓는다. 러시아 함대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 요청을 거부하고, 가족들에게는 “쿠르스크호는 멀쩡히 해저에 있다”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카메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이 광경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가만히 응시하는 아이의 서늘한 눈빛이 묘한 죄책감을 준다.

영화는 이 사건을 취재한 영국 기자 로버트 무어가 쓴 책 ‘어 타임 투 다이’를 토대로 만들었다. 생존 선원들의 실제 리더였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대위는 마지막 비상등이 꺼지고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르는 그 순간, 생존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모두여 안녕. 절망하지 말라”고.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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