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1]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1]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 손 성 필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19.02.01 10:49
  • 호수 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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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삼위태백에 내려가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下至三危太白 (하지삼위태백),

弘益人間歟 (홍익인간여).

- 이승휴(李承休, 1224~1300), 『제왕운기(帝王韻紀)』 권하(卷下)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대한민국 사람 치고 이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명구 중의 명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말은 『제왕운기』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온다. 이승휴의『제왕운기』에 인용된 『본기(本紀)』에 따르면, 이는 상제(上帝) 환인(桓因), 곧 하느님이 아들인 환웅(桓雄)에게 한 말씀이다. 일연(一然)의『삼국유사』에 인용된『고기(古記)』에는 조금 다르게 되어 있다. 인간 세상에 뜻을 둔 아들의 마음을 읽은 하느님이, 삼위태백을 내려다보고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할 만하다고 여기셨다.[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그래서 환웅을 태백산의 신단수(神檀樹)로 내려보냈고 그의 아들 단군(檀君)이 조선(朝鮮)을 건국하였다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다만『제왕운기』에 비해『삼국유사』의 편찬 시기가 앞서고 내용도 조금 더 자세하다. 

홍익인간은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자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으로 해석되어 왔다. 크게, 널리, 두루두루 등의 뜻을 지닌 ‘홍(弘)’의 번역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만, ‘공익(公益)의 추구’가 그 이념이라고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공익의 추구가 고대 국가의 건국이념이자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이라니, 퍽 훌륭하다. 게다가 하느님께서 계시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고래로 공(公)은 정치의 지향으로 표방되어 왔다. 특히 동아시아의 유교, 불교 문화권에서는 그렇다. 얼마나 사익(私益)의 추구를 제어하고 공공(公共)의 정치를 실현하느냐가 문제였다. 어제도, 오늘도 그게 어렵다. 

한편 고전은 재해석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다. 과거에도 정치의 이상은 공익이었다. 하지만 정치의 주체가 달라졌다. 오늘날 하느님의 후손에게 정치를 맡길 수는 없다. 백성이 주인이다.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우리의 대리인을 우리 사이에서 선출해야 한다. 각자가 공공 정치의 주체, 곧 환웅, 단군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민주공화국의 주체로 존중받고 교육받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 조율해 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 조율해야 한다. 존중과 대화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利害)를 조정하고 합의해 가야 한다. 민주적 방법을 통한 공익의 추구를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한다. 

이러한 해석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닌가 보다. 1949년 제정된 대한민국 「교육법」은 홍익인간을 국가의 교육 이념으로 규정하였고, “공민(公民)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 목적임을 명시하였다. 홍익인간이라는 구절이 우리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홍익인간의 이념,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이 잘 구현되어 왔는지, 구현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중략)

홍익인간이라는 고전 명구의 의미를 살피다 보니, 뜻밖에 우리 시대의 공익, 민주, 공교육 등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손 성 필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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