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전두환 前대통령 ③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전두환 前대통령 ③
  • 관리자
  • 승인 2006.08.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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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친구, 나보다 1년 더 살고 따라 왔으면…”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우리 역사입니다.
본지는 정치적 평가나 정파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전직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지는 나라와 민족에게 불의한 일이나 좋지 않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획시리즈로 미뤄두고, 기왕의 기획시리즈를 계속하며 ①이승만 ②윤보선 ③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4번째로 전두환 전 대통령 편을 4회 연속 게재합니다.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 노년·문화 노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획 취재팀〉


우리나라 사람을 11개 직업군으로 구분하여 장수유형을 조사한 결과 종교인 다음으로 정치인이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선거직이건 임명직이건 간에 정치 행위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을 터인데 오래 산다니 의아스럽다. 사회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많으면 많은 만큼 스트레스도 많게 마련이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궁금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도 화려했던 만큼의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아들 전재국씨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지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많다 적다, 해소한다 못 한다를 말하는 것 가체가 불편하다는 뉘앙스였다. 일반론적인 얘기지만 주기적으로 하는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해본다.


김성익이 기록한 「전두환 육성증언」에 의하면 오찬이나 만찬 때 반주로 술을 마시는 경우에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술을 즐기는 정도의 주량이 못 되기 때문에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술로 풀었다는 기록이나 이야기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절에서 담배 끊어


전재국씨에 의하면 전 대통령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차도 즐겨 마신다고 한다. 지인들이나 옛 측근들이 선물로 가져다주는 차들인데, 예전에 비해 더 자주 즐긴다는 것이다.


담배도 끊은 지 꽤 오래 됐다. 전재국씨는 “담배는 안 피우십니다. 절에서 끊으셨어요”라고 확인해 주었다. 백담사에 가 있으면서 끊었다는 이야기다.


임기를 다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 때문이겠지만 생활이 여간 건조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다시피 그의 퇴임 후의 여정은 순탄치 못했다.

 

스트레스가 없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전 대통령은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닐 정도로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전 대통령이 1988년 2월, 7년 단임으로 대통령직을 마친 것은 시대적 정황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필귀정이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이 정치 의식적으로 건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물론 전 대통령 나름의 선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건강했고, 그것은 결국 1980년 5월의 희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쨌든 재임 중 전 대통령은 단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전두환 육성증언」 4월 12일자 기록을 보면 수석비서관들과 점심을 들면서 완연한 퇴임의 분위기에 젖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회상한 것은 청와대에서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던 수석비서관들 역시 대통령의 퇴임이 자신들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표정들이었다. 대통령의 어조는 담담했고 진솔했으므로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개헌논의 중단 선언’으로 표현된 이튿날의 4·13호헌 조치 담화를 녹화하고 난 뒤 점심 자리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 후 정국이 급변하여 2달여 만에 이른바 6·29선언으로까지 이어진다. 전 대통령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할 만 했다.


그런데 퇴임을 앞두고서도 전 대통령의 태도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시위가 격화되고 정국이 자신을 향해 공세적으로 바뀌어 있을 때에도 전대통령은 비교적 여유로웠다.

 

사람들을 만나 늘 하던 대로 농담도 했다. “머리털이 없으면 사람 많은 데서 가족들이 찾기에도 좋습니다. 훤한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요.”

 

자식 부담 없게 독신보다 재혼이 좋아


단란한 가정환경이 전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되었을 것 같다고 보면 무리는 아닐 성 싶다. 전 대통령은 가난했으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밝은 편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돈을 꾸어서라도 해주셨어요. 학교에 내야 할 돈도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들 못지않게 틀림없이 기간 내에 냈습니다.”


부인 이순자 여사와는 물론이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대통령이라는 지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자녀들이 외국에 나갔다 오면 절을 받기도 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여담 삼아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나보다 1년 더 살고 죽으라고 해. 마누라는 친구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이순자 여사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이야기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간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집권 말기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노년에 남성이 홀로 되는 경우 재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된다면서, “남자는 마누라가 없으면 공원 밖에 갈 데가 없어”라고 했다.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아버지가 무척 불편하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도시 노인들의 문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50대 후반의 당시 전 대통령이 요즘의 70대 중반 노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전 대통령은 장인인 고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 앞에서는 담배를 못 피웠다. 그래서 “장인이 집에 오면 반갑지만 담배를 못 피워서 부자유스러웠다”고도 했다.

 

담배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즐기던 담배는 절에서 끊고 지금까지 안 피운다.


스트레스 얘기를 좀 더 하자. 1987년 6월의 상황은 전 대통령의 퇴로가 순탄치 않으리라는 예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비상계엄이니 특별조치니 하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그때 전 대통령은 “바둑을 두다가 잘 안 된다고 자꾸 쓸고 하면 바둑은 안 늘고 성격만 나빠집니다”라며 잠자코 있었다.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었을 터이지만, 전 대통령 스스로 생각할 때 의미 있고 대견한 결단이었을 수 있다.


이른바 ‘3저 호황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에 퇴임을 한 것도 전 대통령에게는 의지가 됐을 것 같다.

 

1980년 집권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던 때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자부심을 느낄만 했다. 경제장관들에게 적당한 선에서 수출을 억제하라는 방침을 내릴 정도였다. 어쨌든 수출을 억제할 정도의 호황기는 그때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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