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메리 수녀처럼 살자
[백세시대 / 세상읽기] 메리 수녀처럼 살자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4.03 13:50
  • 호수 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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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가 되면 오감의 쇠퇴가 현저해진다. 이가 약해져 딱딱한 음식을 씹지 못하게 되고 침 분비량이 줄어들어서 음식을 부드럽게 삼키지 못하게 된다. 귀가 어두워져서 남의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탓에 주위에 고령자가 너무 많아서 늙음을 상대화한다. 즉 ‘저 사람보다는 내가 젊어’라거나 ‘나는 또래에 비해 건강한 편이야’라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안심하기도 한다. 늙음을 거부하지는 않으나 도망칠 길을 찾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자신의 늙음을 상대화할 뿐 절대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노인이 모이는 곳(경로당)에 나오라고 해도 ‘난 아직 괜찮다’, ‘나중에 나가겠다’며 거절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아직 저하되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즐기는 장소(경로당·복지관 등)에 가는 것이 낫다. 스스로 유인을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얻게 될 이득을 따져보거나 배우자나 친구에게 소개해 함께 참석함으로써 그 시간을 더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대학병원의 연구실 같은 곳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뇌 훈련을 한다고 주 1회 2시간 동안 계산 문제를 풀거나 글을 읽게 해 훈련 전후의 뇌 기능을 측정한 결과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한다고 단번에 뇌 기능이 개선될까. 만약 개선의 징후가 보인다면 그보다는 주 1회 2시간의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6일 22시간의 생활이 달라지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훈련에 참여하다보면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음식이나 운동 등 다양한 것에 신경을 쓸 것이다. 훈련하는 동료와 대화를 나눌 것이고 매주 약속 시간에 맞춰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훈련 장소까지 이동하기도 할 것이다. 또 책을 소리 내어 읽다보면 평소에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사람이라도 책에 관심이 생겨 서점이나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할지 모른다. 요컨대 지적 호기심이 강해져 행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생활 습관이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다. 

집에만 틀어박혀 계산 문제를 풀기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 똑같이 생활한다면 그저 계산이 조금 빨라질 뿐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보다는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영화, 연극, 전시회를 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동료와 취미생활을 해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머리를 쓰는 사람은 인지 예비력이 높아져 노화로 뇌가 위축되더라도 기능이 크게 저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미국 노트르담 교육수녀회의 메리 수녀를 통해 입증됐다. 메리 수녀는 100세 가까이 살면서 죽기 전까지 수녀이자 교사로 활동했다. 사후에 수녀의 뇌를 해부했더니 치매 환자와 비슷할 만큼 뇌가 위축돼 있었다고 한다. 병리적으로는 치매가 꽤 진행됐지만 수녀원의 수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문제없이 활동할 만큼의 인지 기능이 유지된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경로당이 폐쇄돼 못 나가는 요즘, 꽃 피는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산이나 공원의 나뭇가지마다 새싹들이 초록의 머리를 내밀고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청이 따가울 정도다. 집에 틀어박혀 계산 문제나 책을 소리 내 읽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서 생활 습관을 바꾸고 인지 예비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치매 예방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인지 예비력’은 말 그대로 인지 기능의 예비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이 능력이 높은 사람은 뇌졸중으로 쓰러져도 인지 기능의 손상이 비교적 적다고 한다.

이 글은 일본 노년행동과학회 회장을 지낸 사토 신이치의 ‘나이든 나와 살아가는 법’(지금이책)에서 인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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