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33] 솔아, 남산 위의 저 푸르른 솔아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33] 솔아, 남산 위의 저 푸르른 솔아
  • 이기찬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0.08.28 13:11
  • 호수 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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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남산 위의 저 푸르른 솔아

멀리 푸르른 남산 솔숲 눈에 들어오는데

우배 잠두 봉우리에 짙은 그늘 덮였어라

어찌하면 저 푸른 기운 청정하게 키우며

천년토록 베여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蒼蒼入目遠松林 (창창입목원송림)

牛背蠶頭萬蓋陰 (우배잠두만개음)

安得長靑滋覇氣 (안득장청자패기)

千年不受斧斤侵 (천년불수부근침)

- 김창흡 (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권5 「반계십육경(盤溪十六景)」중 「목멱송림(木覓松林)


이 시는 삼연 김창흡이 멀리 서울 남산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아름답고 푸르른 솔숲이 훼손되는 일 없이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쓴 시이다. 시의 내용과 메시지는 간략한 듯 보이지만, 그 행간에는 소나무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소나무와 함께해 온 우리네 풍속과 정신과 문화와 역사까지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솔가지 끼운 금줄의 축복 속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솔가리로 군불을 때고 밥을 해먹으며 송이에, 송기떡에, 송엽주에, 솔잎차를 즐기며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에 들어가서 솔숲에 묻히는 삶이었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집 뒤의 청정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식을 위해 기도했고, 아버지들은 소나무의 사철 푸르름과 바위를 뚫는 생명력과 높고 큰 기상을 배우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그 옛날 경복궁과 창덕궁을 건축할 때에도, 세곡 운반에 필요한 조운선이나 병선(兵船)을 제작할 때에도, 소나무는 ‘으뜸 나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제일가는 재목이었다. 따지고 보면 충무공의 거북선과 왜군 안택선(安宅船)의 싸움도 결국은 소나무와 삼나무의 전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중략)

이렇듯 소나무가 우리의 일상과 문화 전반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와 고락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의 유전자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일까? 산림청과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단연 소나무다. 특히 서울 남산의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정체성’의 보루이자 ‘민족혼’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삼연 김창흡이 그토록 지키기를 바랐던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겸재 정선의 <장안연우(長安煙雨)>와 <한양도성 전도>에도 또렷이 나오는 남산 꼭대기의 그 낙락장송 말이다. 1411년 태종이 3천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20일 동안 식재한 이후 울창한 송림이 조성되었고 그로 인해 수도의 안산(案山)으로서 고고한 위용을 자랑하던 저 남산의 소나무가 대대적으로 벌목된 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서다.

일제는 남산 일대에 통감부, 조선총독부, 헌병대사령부, 조선사편수회 등을 지으면서 소나무를 벌채하였고, 특히 조선신궁을 지으면서는 13만 평에 달하는 남산 중턱과 정상부 일대의 수목을 베어냈다.(중략)

광복 75주년을 맞아 남산을 바라보자니 삼연의 삼백년 전 그 간절했던 염원이 다시 가슴에 여울져오는 8월 비오는 날의 늦은 오후이다.    

이기찬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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