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니들이 낫다 /엄을순
[백세시대 / 금요칼럼] 니들이 낫다 /엄을순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20.10.23 14:06
  • 호수 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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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갓난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다리가 묶여 꼼짝 못하게 되자

어미와 형제들 눈물 겨운 행동

자식 학대하는 인간 부모들과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은가

‘후다닥. 쉬익. 꽈당.’

아니 이 새벽에 무슨 일이? 멧돼지 소리는 아닌 것 같고 고양이들이 싸우나 보다. 문을 열고 나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세탁물을 넣는 빨래 바구니 밑으로 누워있는 새끼고양이가 보이고 그 위로는 기괴한 모습으로 배를 내밀고 젖을 먹이는 어미 고양이. 그리고 젖을 먹는 새끼고양이의 다리를 열심히 핥아주는 새끼고양이 형제 세 마리. 아이고. 이걸 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두서너 달 됐을까. 가끔가다 내가 밥을 주는 길고양이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 안쓰러워서 계속 챙겨줬더니 이제는 온 식구가 아예 여기 눌러사는 중이다. 그런데 밤만 되면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새끼고양이 중 한 마리가, 밖에 내어놓은 접이식 헝겊 빨래 바구니를 가지고 놀다가 그 손잡이에 다리가 꼬여 묶여 버린 게다. 놀래서 그걸 풀려고 이리저리 ‘후다닥, 쉬익’ 날뛰다가 꽈당하고 넘어졌고. 넘어진 새끼가 안쓰러워서 어미는 배를 하늘을 향해 비튼 상태로 젖을 물리는 중이고, 남은 세 마리 새끼들도 저마다 열심히 다리 묶인 형제를 위로하는 중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위를 들고, 손잡이에 다리가 묶인 채로 도망 다니는 새끼를 잡으려고 쫓아가는데 나머지 고양이 가족들이 난리다. 가위를 손에 들고 아픈 새끼를 쫓는 나에게, 엄마랑 아들딸 모두 모여 이리저리 내게 뛰어오르며 공격을 해댄다. 해치려는 줄 아나 보다. 가까스로 손잡이를 가위로 잘라 새끼를 구했다. 그때 일제히 나를 쳐다보던 고양이 가족들의 그 눈동자. 많은 얘기가 하고 싶었을 게다. ‘고마워요. 도와주는 것도 모르고 공격해서 미안해요.’ 아마도 이런 눈빛이 아니었을까 싶다.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 왔다. 엄마 나간 빈집에서 배가 너무 고픈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가 불을 내고, 그 사고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던 ‘라면 형제’가 드디어 깨어났단다. 무서운 화염 속에서도 자기 동생을 구하려고 동생을 두 팔로 꼭 감싸 안은 형과, 든든한 형의 두 팔 안에 안긴 채 구조된 동생.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형과 달리 동생은, 유독가스 문제는 있었지만, 몸에는 화상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에서 보내준 따스한 위로금 덕분에 병원비를 지불할 수 있었고 형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반병실에서 치료받던 동생은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 ‘라면 형제’ 엄마도 할 말이야 왜 없겠는가. 하지만 자식을 낳았으면 ‘남들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제대로 먹고 자고 쌀 수는 있게’ 적어도 ‘인간답게’는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닌가.

부모 자격 없는 이런 부모들의 얘기. 자주 들려 온다. 기저귀도 떼지 않은 아기를 우유도 주지 않고 온종일 집에 홀로 방치했던 게임중독 부모. 애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아기의 몇 시간째 갈아주지 못한 기저귀가 어떤 상태일지, 종일 굶주린 그 아가의 모습이 어떨는지. 그 아기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그 시간에, 철없는 젊은 엄마 아빠는 게임 중이었다지 아마.

거짓말을 했다고 9살짜리 아이를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두고 심지어는 3시간 동안 외출까지 했다는 40대 계모와, 그 꼴을 두 눈으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묵인해 버린 비정한 아버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가 안타깝게도 사망했다는데. 그렇게 한 이유도 변명도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고 채무로 인한 부담까지 더해져서 자녀가 자신과 다르게 살도록 훈육’을 한 거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 안다. 초등생 남자아이가 가방 속에 갇혀 살려달라 소리치면서 느꼈을 순간의 그 두려움을. 계모가 가방 위를 발로 꾹꾹 눌러 밟았을 때 가방 속에 전해지는 그 압박과 그 고통을. 가방 속으로 헤어드라이어를 쑤셔 넣어 열기를 불어넣었던 그 순간에는 차라리 의식을 놓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자기가 낳은 아이를 단돈 20만원 받고 팔겠다고 당근 마켓에 내놓은 비정한 미혼모가 있단다. 개나 소나 고양이도, 제가 낳은 자식을 먹이랑 바꾸었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다.

흔히 인간답지 못한 사람을 빗대어 말할 때 ‘짐승 같은 사람’이라 한다. 아마도 짐승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억울하다고 펄펄 뛸 거다. 이런 말로 짐승들을 욕되게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고쳐 말하자.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그나저나.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아동학대 기사를 계속 보면서 그저 화만 내고 있어야 하나. 오늘은 우리 집 길고양이 식구들에게 맛있는 통조림 간식을 주어야겠다. 

‘니들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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