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존엄사’ 허용 판결 논란 뜨겁다
법원 ‘존엄사’ 허용 판결 논란 뜨겁다
  • 관리자
  • 승인 2008.12.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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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자기 결정권 인정 첫사례… 관련소송·분쟁 잇따를 듯

환자 본인 요구때만
회복 가능성 ‘0’일때
생명권< 존엄권 경우

 

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존엄사를 허용하는 첫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적으로 가열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김천수)는 지난 달 28일 뇌사 상태인 김아무개(76)씨와 그 자녀들이 지난 6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운영 중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연명치료장치 제거 청구소송에서 “김씨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인공호흡기 부착 등의 치료행위가 상태 회복이나 개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해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며 “헌법 10조가 보장하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따르면 생명 유지 치료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강요하고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할 때는 환자가 의사의 치료를 거부할 수 있고, 병원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설명> 법원의 존엄사 허용 판결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법제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복지관에서 한 어르신이 임종준비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재판부는 이어 “김씨가 현재 의식이 없더라도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더라도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는 김씨의 평소 발언이나 생활 태도, 기대 생존기간 등을 종합해 볼 때, 의식이 있었다면 치료를 거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원고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더라도 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자신의 딸을 특별대리인으로 내세운 김씨의 청구권은 인정했지만, 자녀들의 치료 중단 요구에 대해선 “환자 본인만이 치료 중단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며 자녀들의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2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폐 조직검사를 받다가 폐혈관이 터져 뇌사 상태로 지내왔다.


이는 법원이 그동안 환자의 생명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권과 가치보다 우위에 두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은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앞으로 관련 소송과 분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7년에는 의식불명 환자로부터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사망에 이르게 한 ‘보라매병원’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가족과 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기존 법원의 입장을 뒤집고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우위에 두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준 의미 있는 사례로 풀이된다.


특히 유서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존엄사와 관련해 아무런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가 존엄사를 원할 것이라는 의사를 추정해 허용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사례에서 환자의 의사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치료가 계속되더라도 회복 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가 사전에 한 의사표시, 성격, 가치관, 종교관, 기대생존기간, 환자의 상태 등을 고려해 환자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 등을 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소위 적극적 안락사 및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해 다룬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선을 그었다.


법원은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의 치료중단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인공호흡기 제거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씨와 함께 소송을 제기한 가족들에 대해서는 “치료의 중단청구가 타인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가족들의 독자적 청구권을 인정하는 입법이 없는 한 치료중단 청구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의사의 치료중단 의무가 인정될 수 있는 요건에 관한 사회적 논의와 함께 존엄사를 판단하는 기준이나 구체적인 입법 마련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판결 이후 보건복지가족부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법제화하는 방안에 놓고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난 달 29일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국민의식·실태조사 및 법제화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 내달 초에는 연구용역기관을 선정해 앞으로 6개월간 관련 연구가 진행된다.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안락사는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으로 나뉜다. 말기암 환자 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독극물 등을 투여해 인위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적극적 안락사라면,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영양 공급이나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행위를 말한다. 존엄사는 뇌사 상태 등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품위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데, 일부에서는 존엄사를 소극적 안락사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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