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배우니 너무 좋아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배우니 너무 좋아요”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4.29 10:40
  • 호수 1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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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생초·한자·예절 강사로 활약
▲ 안규권(72) 어르신이 4월 13일 부산 동래구 낙민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의를 하며 호롱불을 보여주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무슨 불을 켰을까요? 1번 숯불, 2번 촛불, 3번 반딧불, 4번 호롱불. 아는 사람?”

“2번! 촛불이요.”

“아냐, 4번, 호롱불이 맞죠?”

4월 13일 부산 동래구 낙민초등학교 강당. 안규권(72) 어르신이 질문을 던지자 다양한 답변이 쏟아져 나온다. 안규권 어르신은 정답을 궁금해 하는 어린이들 앞에 미리 준비해 놓은 호롱을 꺼내 보여준다. 호롱불을 보지 못한 어린이를 위한 어르신의 배려다.

안 어르신은 호롱불 이야기와 함께 숯불다리미, 베틀 등 과거 선조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 놓는다. 이따금 6·25전쟁 당시 피난살이의 아픔도 쏟아 놓는다. 강의를 듣는 어린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할아버지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안규권 어르신은 최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돌며 일일 역사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 어르신이 강단에 서게 된 것은 지난 4월 초. 부산시 근대역사관이 실시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이 프로그램은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등 격동기를 경험한 노년세대가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르신들이 겪었던 역사적 경험담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달, 계승코자 마련됐다.

현재 대한노인회 부산연합회를 비롯해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부산시지부 등 부산시 거주 70세 이상 15명의 어르신들이 부산 지역 내 초중등학교 54개 학교를 방문, 6월까지 이어진다. 안 어르신은 대한노인회 부산 금정구지회를 통해 참여했다.

이 수업은 어르신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관련 물건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반응도 뜨겁다.

부산근대역사관 관리담당 정봉근 계장은 “처음엔 어린이들이 40~50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에 집중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며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예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등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 안규권(72) 어르신이 4월 13일 부산 동래구 낙민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의하고 있다.

김정란(64)씨와 윤정순(61)씨는 직접 기른 야생초를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꽃말이나 유래 등 꽃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야생초 강사'다. 이들이 야생초 강사로 나선 것은 4년 전 충북 증평문화원 실버문화학교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야생초 이야기’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문화원에는 이들 외에도 3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발톱, 강아지똥풀, 쑥, 들국화, 민들레 등 야생초들을 직접 키우고 전시회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야생초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보통 10~20점의 야생초를 키우지만 김정란씨는 200점이나 키운다. 직접 키워봐야 어린이들에게 야생초에 대해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키운 야생초는 매년 열리는 ‘야생화 전시회’에 출품된다. 올해는 5월 22~24일 3일 동안 증평 보강천 잔디밭에서 ‘증평문화예술의 날 축제’에 출품돼 선보이게 된다.

윤정순씨는 “손자손녀 또래 어린이들에게 우리 토종의 야생초를 알려 줄 수 있어 뿌듯하다”며 “좋아하는 꽃도 보고 공부도 하게 돼 더욱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방학 시기에 맞춰 어르신들이 훈장님으로 나서 한자와 예절교육을 가르치는 어르신들도 있다.

대한노인회 수원시 팔달구지회(지회장 김기현)는 1998년부터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 때마다 인근 초등학교와 연계해 충효교실을 실시하고 있다. 지회 소속 교사출신 회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배출한 학생 만해도 500여명이 넘는다.

강원도 동해시지회(지회장 이남균)도 경로당 회장이나 경륜을 갖춘 어르신들이 강사로 나서 지역 경로당을 중심으로 학생,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충효교실 및 사랑의 학당을 운영하고 있다. 해 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도 높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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