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시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시어머니께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시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시어머니께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22.12.19 10:47
  • 호수 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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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치매 남편을 돌본 10여년은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친 세월

의사 권유로 요양원에 모시면서

죄책감, 두려움에 떠는 그 마음

당신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분

시부가 병의 진단을 받은 것은 이미 10여년 전이다. 조용히 식사하시고, 인사를 할 때는 함박 웃음을 짓는다. 가끔은 허공에 70년 전 친구를 소환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하시고 안방에서 한국전 현장을 구현하기도 하시며, 세월에 바랠만도 하겠구만 여전히 유머를 구사하신다. 

심지어 며느리인 필자를 미스코리아라고 부르시는 걸 보면 나의 시부는 안목이 높고 정확하다. 온화한 고백처럼 들리는 목소리와 가끔 먼 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옛날 학자의 기품 그대로다. 그 점잖음 때문에 모두 나의 시부가 치매라는 사실을 가끔 잊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예쁜 치매란 없다. 가끔 지켜보는 이에게는 예쁜 치매일지 몰라도 돌보는 이에게 예쁜 치매란 없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부를 돌보던 시모는 며칠 전 시부의 질병 상태 검진을 위해 진료를 받던 중 의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홀로 치매환자를 돌보면 본인도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힘들겠지만 지금 이 정도의 상태라면 요양시설로 모시기를 권한다는 말이었다. 의사의 우려와 걱정에 시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50년이 훌쩍 넘는 결혼생활에 24시간 간병만 10년이 넘었으니, 시모는 이미 시부의 삶에 부조(浮彫)가 되어 버렸던 터라 집에서 모시다 떠나보내시겠다 마음먹었던 그림은 허공에 부서졌다.

요양시설에 모시는 일은 행정이 아니라 심정의 일이다. 죄책감의 강을 건너고 두려움의 산에 올라야 한다. 시설에 모시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자식의 제안과 강조에도 자식의 눈이 가장 무섭고 최종 결정자로서 도장을 찍는 그 손은 생각만으로도 떨린다. 

어느 시설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시점에 갈 것인가, 시설로의 이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의 차로 갈 것인가 시설의 차를 타고 갈 것인가 등의 결정을 한 후에도 낡은 옷을 입혀 보낼 수 없으니 철철이 입을 옷을 마련하고, 시설에서 덮을 이불도 새로 장만해야 한다. 

아들 장가보내는 것도 아닌데, 딸 시집보내는 것도 아닌데, 새 옷을 사고 새 이불을 장만하며 떠나보낼 일에 심장이 요동친다. 무엇보다 힘든 일은 자식들에게 입소 결정을 알리는 일이다.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이미 써서 보낸 카톡의 문자도 얼른 지워버린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는 노래처럼 망설이다 지우고, 쓰고는 다시 지워버리기를 반복하다 그만두어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예쁜 치매는 극진한 돌봄을 먹고 유지된다. 가족의 청춘과 에너지, 진액을 혈액삼아 치매환자의 몸과 마음은 살아 움직인다. 그 오랜 시간의 돌봄은 늘 돌보는 자의 삶을 원천으로 하기에 돌보는 이의 시각과 후각을 사로잡은 그 세월이 10년이었던 것이고, 손발을 붙들었던 세월이 10년이었다. 그리고 문안에 갇힌 채 이성과 감성을 문고리에 잡아매고 두문불출 세월이 그대로 10년이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그 사이 시모는 우울의 세월로 10년, 분리의 시간으로 10년, 희망 없는 시간으로 10년을 보냈다. 그 모든 감정과 시간을 삼키며 머리카락은 허옇게 세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모두 유행이 지나버렸다. 그렇게 청춘도 지나버렸다. 

중년과 노년 활력의 시기를 모두 간병에 쏟아부었고 지칠대로 지쳐 욕이라도 한마디 하겠건만,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는 내내 시모는 눈이 아프도록 울고 또 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를 묻고 또 묻는다. 정답 없는 문제를 풀어야하는 심정 앞에 지난 10년의 땀은 모두 눈물이 된다.

이렇게 우는 내 시모가 안쓰럽고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왜 우느냐. 울면 엉뚱한 데 털이 난다”고 때 아닌 농담을 해버리는 시부를 떠나보내며, 온 가족은 돌아서서 울고 앞서서 약속했다. 

시모여, 울지 마셔요. 그 눈물은 무정한 자식들이 흘려야 할 눈물이고, 고마운 남편이 흘려야할 눈물이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셨고, 그 어느 사람보다 자부할만한 분이신 나의 시모여, 내게 안기시라. 힘겨웠던 세월에 굳은 어깨를 기대시고, 주름진 얼굴을 품에 묻으시고, 손을 등에 감고 울고, 아주 실컷 울고는 마음을 떨어내시라. 

버린 것이 아니어라. 자주자주 찾아뵙기로 약속하고 모신 것이라. 우리는 약속을 지킬 것이니 시모여, 눈물을 거두시라. 이번 주부터 우리는 매주 시부를 보러 갈라니, 시부가 좋아하시는 찰밥이랑 대구탕은 못 가져가도 이번 주말에 불효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 타고 아부지 보러 가요. 아부지와 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 지키러 가요. 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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