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키오스크’, 설치 대수 늘려야… 고령층 사용 힘든데다 대수 적어 진땀빼기 일수
매장 ‘키오스크’, 설치 대수 늘려야… 고령층 사용 힘든데다 대수 적어 진땀빼기 일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2.13 09:17
  • 호수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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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 사진=연합뉴스

젊은이들도 “뒷사람 눈치보여”… 대수 기준 마련해야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2월 7일 서울 강서구의 한 작은 식당에서 6명의 사람들이 테이블 대신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키오스크가 한 대밖에 없어 벌어진 풍경이다. 같은 날 서울역의 한 유명 패스트푸드점. 인파가 몰렸지만 넉넉하게 설치된 키오스크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월하게 주문을 했다. 일부 고령자가 주문이 막혀 어려워했지만 직원이 다가워 도와줬고 무사히 메뉴 선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한 A씨는 “글씨도 잘 보이지 않고 가게마다 사용법이 미세하게 달라 키오스크 있는 매장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매년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통일되지 않은 기준 탓에 노인을 비롯한 고령층의 고충이 크다. 특히 명확한 설치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고 자영업자에게 모든 부담을 떠안기는 구조여서 이에 대한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2월 5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국내 키오스크 보급 현황(추정)’에 따르면 민간 분야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지난해 2만6574대로 2019년 8587대에서 3배 가량 증가했다. 반면에 서울디지털재단이 발표한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키오스크 이용률은 45.8%에 불과했다.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 마주하는 첫 난관은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 정보다.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의 경우 키오스크 화면에서 보여지는 식음료 종류가 10가지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제 버튼 등이 더해지면 심할 경우 한 화면에서 보이는 정보가 20개를 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의 경우 시각, 인지 기능이 자연스럽게 저하돼 좁은 공간에 시각정보가 여러 개 있을 때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 앨라배마대 연구팀이 2017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고령층이 젊은층보다 짧은 문장을 읽어내는 속도가 약 30%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글자를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자간도 31% 넓어야 했다. 즉, 고령층이 정보를 읽어내는 속도가 느린데다 밀집된 정보를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사용 절차가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점원에게 음식을 주문할 때는 먼저 메뉴를 고르고 이후 점원에게 주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면 키오스크는 메뉴를 고르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주문이 시작된다. 화면에 소개된 음식을 하나씩 보고, 장바구니에 담고 메뉴를 담을 때마다 추가 사항들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다 마쳐야만 비로소 결제를 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대부분의 키오스크는 사용할 때 점원을 통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많은 절차를 거치도록 설계됐고 기계마다, 업체마다 화면 구성도 상이해 더 큰 혼란을 준다.

또 다른 문제점은 키오스크 설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1월 28일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에 복지부는 장애인 키오스크는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위치에 설치돼야 하고, 키오스크 하단엔 휠체어 발판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상태다. 그런데 매장 규모 대비 얼마나 설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앞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키오스크가 충분히 설치돼 있으면 이용자의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키오스크 사용이 능숙한 젊은층이라도 적은 수의 키오스크로 인해 상당한 불편함을 겪고 있다. 2월 8일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조사 결과 절반에 가까운 49.2%가 키오스크의 주된 단점(중복응답)으로 ‘주문이 늦어질 경우 뒷사람 눈치가 보이는 일이 많다’로 꼽았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7월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키오스크 이용이 어려운 이유(중복응답)로 ‘주문이 늦어서 뒷사람 눈치가 보임’(52.8%)이 가장 많았다. 키오스크가 넉넉히 설치돼 있다면 겪지 않을 문제다.

현재 일반적인 크기의 키오스크 가격은 200만~4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40만원대 미니 키오스크와 태블릿형 키오스크 등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태블릿형의 경우 테이블마다 설치한 곳도 있다. 이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제조사마다 다른 화면 구성과 이용 절차를 통일하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키오스크 단말기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개발했다. 또 장애인금지법 시행령이 적용되면 이를 활용한 키오스크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행령에도 설치 대수에 관한 부분은 명시되지 않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보인다.

NIA 관게자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차차 적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단, 얼마나 설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번 장애인금지법 시행령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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