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최백호 노래가 주는 행복감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최백호 노래가 주는 행복감 / 이동순
  • 이동순 가요평론가
  • 승인 2023.03.06 10:46
  • 호수 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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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가요평론가
이동순 가요평론가

 태어나자마자 부친을 여의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 최백호는

 음악에 슬픔과 고통을 녹여내

‘낭만에 대하여’·‘영일만 친구’는

 성찰을 통해 슬픔 이기도록 격려

모든 예술작품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슬픔과 고통은 예술작품을 빚어내는 토양이자 원동력이다. 가족의 죽음, 가난, 질병, 이별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한 예술가의 삶이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거기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면 오로지 패배와 망연자실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는 그 간난신고를 껴안고 그것을 자기와 통합시켜 놀라운 예술작품으로 승화한다. 한 예술가에 있어서 고통과 불행은 세월이 지나 되돌아볼 때 행복과 은총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물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수 최백호(崔白虎·1950~ )에게도 그런 적용을 해보게 된다. 

부산 동래에서 출생한 그의 초반기 생애는 고독과 가난, 냉대와 질병이 주는 고통과 상처에 시달렸다. 국회의원이었던 부친 최원봉(1922~1950) 선생은 반골 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비판적 정신을 지닌 지식인으로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조리를 일일이 지적해 당시 집권자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한 그해 11월 서울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내려가던 중 추풍령 부근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외동아들 백호가 태어난 지 불과 7개월 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최백호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최백호의 부친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형인 철학자 범부 김정설(1897~1966)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최원봉이 귀한 아들을 낳았을 때 범부는 제자의 아들 이름을 백호(白虎)로 지어주었다. 하지만 어린 백호는 집안의 고의적 소외와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백호의 조부는 손자를 ‘아비 잡아먹은 놈’이라며 심하게 일그러진 편견을 가졌다. 

이 때문에 가장을 잃은 집안은 가난과 고립 속에서 고통의 시절을 보냈다. 사범학교 출신인 모친이 교직생활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대학 연극영화과에 합격했지만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홀로 고독한 시절을 보냈다. 

부산 가야고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지만 이번에는 결핵이라는 질병이 백호의 삶을 주춤거리게 했다. 이럴 때 음악은 그의 삶을 지탱하게 해준 유일한 기둥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유일한 의지였던 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최백호는 천애고아가 됐다. 하지만 그때부터 모든 고통을 잊으려는 듯, 혹은 그 고통과 대결하려는 듯 미친 듯이 음악에 빠져들었다. 

1977년에 발표한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와 1979년의 ‘영일만 친구’, 1995년 발표작 ‘낭만에 대하여’는 가수 최백호의 위상을 요지부동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절창 ‘영일만 친구’는 힘든 시절 음악적 지향을 같이 하던 친구 홍수진에 대한 헌정곡이다. 포항 부근의 영일만 어느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음악에 몰입하다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최백호는 이 노래의 저작권을 포항시에 흔쾌히 기증했다. 

최백호의 대표곡은 많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내 마음의 노래’, ‘그쟈’,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불나비’, ‘소녀야’, ‘왜 웃느냐구요’, ‘첫사랑’, ‘어느 여배우에게’, ‘낭만에 대하여’ ‘어이’, ‘다시 길 위에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부산 출생의 가수 최백호가 자신의 고향 부산을 테마나 배경으로 다룬 노래를 들어보자면 ‘부산에 가면’, ‘청사포’, ‘바다 끝’ 등이 있다.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에도 부산의 옛 이미지가 짙은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노래 ‘부산에 가면’ 가사에는 부산역과 광안리 등의 공간적 배경이 등장한다. 부산 출생의 출향인사가 고향에 돌아와 첫사랑의 추억이 서린 곳을 떠돌며 지난 시절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이런 점은 노래 ‘청사포’도 마찬가지다. 해운대 동백섬 달맞이고개 청사포가 파노라마처럼 등장하고 있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는 우선 따뜻하다. 가슴에 포근히 젖어든다. 그 아련함은 우리의 가슴 속에 저마다 지니고 있는 추억의 실타래를 낱낱이 풀어내어 지난날 아픈 상처와 고통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그 소환은 우리를 다시금 고통 속으로 휘몰아놓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과 상처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성찰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 해 전 최백호 콘서트를 경북 경산시민회관에서 감상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그날의 감동이 다시금 재생된다. 최백호의 음악 세계를 일으켜준 토양도 부산이었고, 신산했던 부산에서의 고통과 상처가 그의 대중예술을 더욱 크고 빛나는 것으로 추동시켰던 것이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위스키 한 잔에다/ 슬픈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낭만에 대하여’ 서두) 최백호 노래의 이런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봄비 내리는 부산 거리를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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