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전, 히틀러부터 교황까지 풍자하는 ‘미술계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전, 히틀러부터 교황까지 풍자하는 ‘미술계 악동’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3.27 13:29
  • 호수 8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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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벽에 바나나를 은박테이프로 붙인 ‘코미디언’이란 작품을 12만 달러에 판매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마우라치오 카텔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벽에 바나나를 은박테이프로 붙인 작품 ‘코미디언’.
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벽에 바나나를 은박테이프로 붙인 ‘코미디언’이란 작품을 12만 달러에 판매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마우라치오 카텔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벽에 바나나를 은박테이프로 붙인 작품 ‘코미디언’.

2011년 뉴욕 전시 이후 최대 규모의 회고전… 조각, 설치 작품 등 총 38점

2019년 화제 모은 바나나 소재 ‘코미디언’, 시신에 천 덮은 ‘모두’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프랑스의 미술 거장 마르쉘 뒤샹(1887~1968)은 1917년 미국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그 유명한 ‘샘’을 출품하며 큰 파장을 일으킨다. 철물점에서 파는 남자 소변기에 ‘R.Mutt 1917’이란 서명을 새긴 작품으로 현대 미술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뒤샹을 모방한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다 2019년 12월 국제적인 미술장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벽에 바나나를 은박테이프로 붙인 작품 ‘코미디언’이 12만 달러에 판매되는 일이 벌어진다. 며칠 뒤 한 행위예술가가 퍼포먼스로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리는 ‘코미디’가 발생한다. 이 일련의 사건에는 현재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하나이면서, ‘코미디언’을 제작한 마우라치오 카텔란(63)이 있다.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마우라치오 카텔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이태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7월 16일까지 진행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전에서는 조각, 설치, 벽화 주요 작품 총 38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알려졌다. 

‘악동’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이번 전시는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먼지를 뒤집어쓴 노숙자가 기둥에 기대어 누워 있는데, 사람이 아닌 ‘동훈과 준호’라는 작품이다. 노숙자를 모델로 한 이 시리즈는 1996년 최초 공개 당시 관람객이 경찰에 신고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누군가 등록금 인상 반대 팻말을 세워둬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를 모르는 관람객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1층 천장 부근에는 귄터 그라스의 고전 ‘양철북’ 속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소년(무제‧2003)이 북을 치는 소리가 7분마다 들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유복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와 청소부였던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학교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이는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1997)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가까이서 확인해 보면 양손 손등에 연필이 꽂혀 있다. 힘들었던 가정 환경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유년 시절을 투영하면서 동시에 억압받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듬는 작품이다.

또 그는 미술 역시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다. 28세가 되도록 미술관 한 번 가보지 않은 그는 어느 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다. ‘코미디언’은 이처럼 자유분방하고 선입견이 없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전시 중에 바닥을 뚫고 머리를 내미는 카텔란 인형은 정규 미술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미술계에 침입한 카텔란 자신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작품은 표현의 성역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 ‘그’(2001)와 ‘아홉 번째 시간’(1999)이다. ‘그’는 뒤에서 보면 양복 입은 소년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듯 기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앞을 보면 영락없는 히틀러의 얼굴이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지만 독일에 협력했다는 의심을 받는 스웨덴 미술관의 전시 제안을 받고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홉 번째 시간’.

‘아홉 번째 시간’은 붉은 카펫 바닥에 운석을 맞고 쓰러진 요한 바오로 2세(당시 교황)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스위스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일 때 종교계의 큰 비난을 받았다. 

그의 냉소적인 비판의 칼날은 테러, 전쟁 등 무자비한 살상으로도 향하고 있다. 거꾸로 선 두 경찰관을 표현한 ‘프랭크와 제이미’(2002)가 대표적이다. 한 경관은 팔짱을 끼고 한 경관은 두 손을 내린 채다. 그다지 심각한 얼굴들이 아니다. 이 작품은 9·11테러 직후에 내놓은 작품으로 당시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던 공권력을 우스꽝스럽게 비꼰 거다. 또한 테러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의 실패를 꼬집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은 단연 시신에 천을 덮은 것처럼 보이는 아홉 개의 조각 ‘모두’(2007)다. 각종 참사의 희생자를 표현한 것으로 미국에서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 그리고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또다시 큰 트라우마를 남긴 이태원 참사 등 다양한 비극을 연상케 한다.

그의 작품 대다수에서는 냉소가 넘치지만 희망을 암시하는 작품들도 있다. 벽화 ‘아버지’와 사진 ‘어머니’는 가족애를 자극하고 전시장 한켠에 설치된, 낡은 신발 속에서 고추가 자라는 ‘무제’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이 싹을 틔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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