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34] 금색(金色)은 실제 색이 아니라 ‘고귀함’을 표현
[한국의전통色이야기 34] 금색(金色)은 실제 색이 아니라 ‘고귀함’을 표현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3.05.02 10:32
  • 호수 8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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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金色) 와형소아(蛙形小兒)

◎“한 금색(金色) 와형(蛙形: 개구리 모양)의 소아(小兒)가 있었다. (......)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장성하자 태자를 삼았다.”<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어느 날 초저녁에 왕이 원광의 머리를 보니 금색이 찬란하게 밝아 태양의 형상이 그의 몸을 따라 다니니.<삼국유사> 

◎금합(金榼)이 하늘에서 내려와 있었는데 그 안에 금색 알(卵)이 있었고.<가락국> 

◎예전에 금색 고기(魚)가 오색(五色) 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헤엄치고 놀아 이 범어사(梵魚寺)란 이름을 얻었다.<세종지리지> 

위의 글에 표현된 금색은 실제 금색이 아니다. 어찌 금색 개구리 모양의 어린 아이, 금색 알, 금색 고기 등이 있겠는가! 실제로 금색은 황금색, 금빛 등의 색이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의 풍물을 기록한 『고려도경』에도 금색(金色)이 나오는데 그것은 노을에 반사된 금빛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금색은 실제 금의 색, 칠한 색, 염색, 채색 등의 표면색이 아니라 빛의 색일 것이다. 

또한 ‘금색 와형(蛙形)’ 설은 억지로 이론을 끌어다 붙인 전설이라고 했다.<이병도 역주 삼국사기-(상권) p.326> 

금빛 빗물로 변신한 제우스가 다나에의 몸에 스며들어 페르세우스라는 신의 아들이 태어났듯이(그리스 신화), 고구려 시조의 탄생을 신화화하거나 금빛 후광이나 금빛 기운이 서림 등의 고귀함을 표현하기 위해 금색(金色)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할 때에는 한글도 없었으니 ‘금빛’으로 표현할 수 없었기에 한자로 ‘金色’ 이라고 기록했을 것이다. 

금색의 실제색은 황금색, 황금빛, 황색(黃色)이다. 금색 와형(蛙形)의 해석은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金色’ 색명 그 자체는 ‘한국사’ 원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므로 금빛, 황금색, 또는 황금빛, 황색 등의 용어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금색 와형소아(蛙形小兒)의 금색이 실제 금색이 아니고 비유적으로 사용된 금색이라 해도 1145년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이후 정통 ‘한국사’에 기록된 최초의 색명이다. 

‘황색’은 대한제국 이후 사용

‘한국사’에서 마지막으로 기록된 색명도 황색(黃色)이다. 황색은 중국 황제의 색이므로 1910년 대한제국이 되어서야 황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 

◎기로소(耆老所)가 지금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옛 일이 되어 버린 셈이니 우선 봉심(奉審)하고 족자표구를 고치게 하되 옛날에는 반드시 홍색(紅色)으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황색(黃色)으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 (......) 심순택이 아뢰기를, “지금은 천자(황제=고종)의 예를 행하시니(今行天子之禮) 색(色)은 황(黃)색을 숭상해 이렇게 고치는 것은 아주 합당합니다.” (......) 이제 관제(官制)를 개정하자면 아무래도 변통해야 하는데 우선 통편(通編)대로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고종 39년, 1902>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한 결과로 대한제국이 되어 황색 곤룡포를 입었다는 이야기다. 즉, 이때부터 중국 황제만 사용하던 황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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