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의 명암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의 명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5.15 10:26
  • 호수 8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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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2020~2021년에 건설된 아파트는 거르는 걸 추천드립니다.”

2022년 1월 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글쓴이는 당시 건설 자재 가격 폭등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철근을 20~30% 덜 넣는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글을 본 직장인들은 “우리나라가 중국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리냐”라며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G건설사에 다니는 한 직장인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철근 10개 넣을 거 6~7개만 넣는 일 없다. 감리도, 시행사도 눈 안 감아준다”고 일침을 날리며 단순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 글이 허언이 아닌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최근 인천 검단신도시에 짓고 있던 한 아파트 주차장이 철근을 덜 사용한 탓에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다행히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없었지만 입주 후 벌어졌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아파트를 짓고 있던 시공사는, 철근을 덜 넣는다고 주장한 글쓴이에게 일침을 가한 직장인이 다니는 G건설사였다. 이 사건으로 철근 부족을 주장했던 글쓴이는 ‘철근좌’라 불리며 뒤늦게 재조명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8일 같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경찰관으로 추정되는 한 직장인이 증거물로 제출된 성범죄 영상을 보며 흥분된다는 글을 올려 충격을 선사했다. 경찰청에 다니는 이 글쓴이는 “출근해서 준강x 고소 건 성관계 녹음파일 듣고 몰카 영상을 보는데 꼬릿꼬릿하다”고 적었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 “이걸 보면서 x기되는 내 자신이 비참하다”고 덧붙여 읽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일기장에 써도 창피할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커뮤니티에 올림으로써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추락시킨 것이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이용자들이 익명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직장 이메일을 인증해야 가입되는 시스템이기에 사람은 숨었어도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그대로 노출된다. 자칫 잘못하면 한 사람의 일탈로 조직 전체 이미지가 망가질 수도 있다. 또 극히 일부긴 하지만 계정을 구매해 악의적인 활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

물론 철근좌의 사례처럼 순기능도 많다. 과거 기업 내부에서 부도덕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보복이 두려워 이를 외부에 알리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는 글쓴이를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직장 내 부조리를 폭로하는 장으로 자리잡았다. 

결국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가 사회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지나치게 익명성에만 기대지 말고 이용자들 스스로 책임감 있게 이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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