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행주가(街) 예술이야(夜)’를 보고
[백세시대 / 세상읽기] ‘행주가(街) 예술이야(夜)’를 보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5.15 10:59
  • 호수 8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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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역사유적지는 한밤에 조명을 받으면 더욱 아름답다. 그리스 파르테논의 야경을 보시라. 최근 AI(인공지능), 컴퓨터 등 첨단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가 유물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행주산성의 야간축제 ‘행주가(街) 예술이야(夜)’(4월 28~5월 14일)가 대표적인 미디어아트이다. 고양특례시 덕양산(해발 125m)에 있는 행주산성은 약1km의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의 역사적인 격전지이다. 

지난 5월 10일 저녁, 차를 주차한 뒤 LED 조명으로 만든 포졸 두 명이 지키는 대첩문을 들어섰다. 눈앞에 펼쳐진 빛의 세계에 정신이 번쩍 났다. 레이저빔으로 탄생한 작은 별들이 오르막길 위에서 춤을 추고, 울창한 나무 사이에 걸린 수많은 청사초롱이 바람에 흔들렸다. 난간에 설치된 LED등이 점멸하며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앙증맞은 불빛의 청사초롱을 손에 든 방문객 무리를 뒤따라가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강을 따라 김포, 방화 등 일대의 야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자유로를 내달리는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이 강물 위로 반사됐고, 주홍색의 아치형 방화대교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멋지게 보였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북소리와 군사의 함성이 크게 들려왔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북 체험 ‘행주대첩, 승전고를 울려라’였다. 충의정에 설치된 대형 북을 치면 10여m 떨어진 행주대첩비 앞에 놓인 스피커를 통해 우렁찬 함성이 들려온다.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 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진행자로부터 북채를 전달 받아 두 손으로 감아쥐고 난생 처음 북의 심장을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왜군 3만명을 무찌른 조선군 2800여명이 동시에 내지르는 환희의 소리에 전율감이 느껴졌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밤하늘 위로 우뚝 솟은 대첩비 위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채로운 색과 이국적 디자인의 문양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이번 야간축제의 미디어아트는 홍익대 MR Media Lab(총감독 박주현)의 작품이다.

서울서 70년 가까이 살면서도 여직 행주산성을 가본 적이 없다. 아녀자들이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다는 행주치마의 유래 등에 익숙해서인지 따로 시간을 내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행주대첩이 발발한 건 이곳이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기 때문이다. 1592년 5월 23일, 일본은 조선을 침략한지 불과 두 달 만에 한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듬해에 평양성을 점령했던 왜군은 조선군과 명군의 반격을 받아 한양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때 왜군을 상대한 장군이 권율(1537~1599년)이었다. 권율 장군은 한양의 왜군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기 위해 행주산성에 진을 쳤다. 관군, 의용, 승군으로 하여금 목책을 두르고, 화약무기를 실은 화차, 시간차로 폭발하는 비격진천뢰, 신기전 등을 대기시켜놓았다. 왜군은 명군을 벽제관에서 크게 격파하자 다음에 행주산성을 공격했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왜군의 공격이 7차례나 이어졌다. 처음에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행주산성이 곧 함락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4차 공격 때 왜군 총대장이 부상을 당하고, 때마침 이순신 장군이 보내온 화살 보급품이 도착하면서 전세가 조선군에 기울었고 결국 왜군은 퇴각했다.

행주산성은 볼 것도 많고, 들를 곳도 많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으뜸이다. 대첩문에서 시작해 충장사, 충의정, 진강정을 지나 전망대를 거쳐 다시 대첩문으로 돌아오는 3.7km의 순환코스와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3시간 6km의 산책로, 임진왜란 당시 무기류와 권율 장군의 주요 전투도 등을 전시한 공간, 산성 입구에 즐비한 맛집 등 노인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유적지이다. 

이날 행주산성 야간축제를 둘러본 한 관람객은 “행주산성의 아름다운 야경과 역사적 가치를 음미하며, 가슴 벅찬 승전의 순간을 미디어아트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무용과 대금·해금·장구 공연을 비롯 목판인쇄, 메타버스, 신기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꾸며진 개막식을 놓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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