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기관들 “현지조사 너무 가혹,착오 모르고 있다가 거액 환수” 급여청구시스템 개선 필요
장기요양기관들 “현지조사 너무 가혹,착오 모르고 있다가 거액 환수” 급여청구시스템 개선 필요
  • 조종도 기자
  • 승인 2024.01.26 14:33
  • 호수 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시에 들이닥쳐 범죄자 취급… “시설장 극단적 선택의 원인 제공”

거액 신고 포상금 지급… “시설장-직원 불신감 조장”

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요양기관들의 개선 요구가 거세다. 사진은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요양시설 임대허용정책에 반대해 장기요양인들이 시위를 벌이는 모습. 복지부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서 요양시설 임대 허용 정책을 검토한다고 밝혔으나 요양기관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유보된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요양기관들의 개선 요구가 거세다. 사진은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요양시설 임대허용정책에 반대해 장기요양인들이 시위를 벌이는 모습. 복지부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서 요양시설 임대 허용 정책을 검토한다고 밝혔으나 요양기관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유보된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백세시대=조종도 기자] #1. 부산에서 한 노인주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던 A씨가 지난해 12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자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A씨의 주야간보호센터를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실시한 직후였다. 현지조사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하여 조사 시작 당일 예고도 없이 불시에 이뤄져 노인장기요양기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장기요양인들은 A씨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불합리한 현지조사 및 가혹한 환수조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2.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B요양원은 2022년 건보공단으로부터 23억원에 달하는 장기요양급여비용을 환수조치 당했다. 이 요양원의 일부 요양보호사가 입소 어르신의 속옷을 세탁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세탁을 담당하는 위생원이 해야 될 일을 요양보호사가 했다는 것이다. 이 요양원은 외부 세탁업체에 세탁을 맡기고 있어서, 위생원을 따로 둘 필요가 없었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요양보호사가 세탁을 한 것인데, 건보공단은 ‘인력 배치 기준 위반’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위 사례는 우리나라 장기요양기관들이 겪는 힘겨운 현실을 말해주는 단면이다. 장기요양기관 대상 불합리한 현지조사와 무자비한 환수조치가 이뤄지는 현장인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08년 7월 시작돼, 올해로 16년째다. 등급에 따라 수급자가 재가급여, 시설급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재원은 국민이 내는 보험료와 국고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수급자 수는 2008년 21만4000명에서 2022년 101만9000명으로 증가했고 장기요양기관은 2만7000개소, 종사자 수는 72만명에 달한다. 

‘2019 장기요양실태조사’에 의하면 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84.1점으로,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책 중 하나로 평가된다.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도 사회복지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영양사 등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으며, 제도의 정착에 따라 새로운 효문화를 만든 것으로도 평가된다.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현지조사

하지만 장기요양기관 운영 현장에서는 아직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현지조사와 환수조치를 둘러싼 장기요양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갈등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의해 장기요양보험료를 징수하고 수급 여부 결정 및 등급 판정, 급여의 제공, 장기요양기관 지정‧취소, 부당이득의 징수 등 광범위한 관리‧운영 업무를 맡고 있다.

이에 공단은 장기요양급여 비용을 부당 청구한 기관을 조사해 환수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라면서, 지난 2013년부터 요양기관 현지조사 전문 조직을 설치해 엄격하게 조사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요양기관들은 공단의 현지조사가 과도하고, 시설장과 종사자를 갈라치기 하며, 시설장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한다.

장기요양인전국연대 추진위원회 정우정 위원장은 “행정조사기본법(17조)에 현지조사 개시 일주일 전에 대상 기관에 서면으로 사전 통지를 해야됨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증가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조사 당일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어떤 여성 시설장의 경우, ‘하혈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와 있는 상태고 입원수속을 밟으려고 한다’고 말했는데도, 공단 조사팀은 ‘죽을 병 아니면 빨리 와서 조사 받으라’고 했다”며 “여성의 수치심마저 자극하면서까지 현행범 다루듯 조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단 부울경지역본부 현지조사 담당자는 “행정조사기본법에 증거 인멸 등으로 조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는 사전 통지 없이 당일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에, 현지조사의 특성 상 구두로 조사목적 등을 설명 하고 동의를 받아 진행한다”고 말했다.

또한 환수금액의 10~30%(금액이 크면 10%)를 포상금으로 주는 ‘신고 포상금제‘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한 요양원의 직원이 부정수급을 신고해 1억원을 환수했을 경우, 신고 직원은 1000만원의 포상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요양기관 내부 직원의 경우 최대 2억원까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정 위원장은 “신고 포상금이 신고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시설장과 직원들이 서로 불신하게 되고 그런 불신 속에서 어르신을 케어한다면 케어가 제대로 되겠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부정수급 판정도,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라 직원의 진술에만 의지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공단 부울경지역본부 장재민 과장은 “관계자 진술만이 아니라 영치받은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면서 “최종적으로 부당 여부를 검토할 때는 추후 소송까지 대비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 옥죄는 월 기준 근무시간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주 40시간, 일 8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게 돼 있고, 월 근로시간은 따로 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단은 장기요양 종사자들에게 ‘월 기준근무시간’이라는 제도를 별도로 제시하여 지키도록 하고 있다. 월 근무시간은 매월 달라진다. 예컨대, 올해 1월은 근무일이 22일(31일 중 토‧일요일과 1월 1일 휴일 제외)이므로 월 근무시간은 176시간이 된다. 

문제는 매월 달라지는 월 기준 근무시간에서 단 1시간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그 달의 해당 종사자는 근무를 안한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만약 한 명의 요양보호사 근무시간이 1시간 부족해 근무를 인정받지 못하면, 인력배치 기준(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위배되어 예외 없이 환수 및 영업정지가 내려진다.

이에 대해 한 요양원 운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으면 되는데, 장기요양 종사자에게는 지키기 쉽지 않은 ‘월 기준근무시간’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요양보호사들은 주‧야간 근무가 계속 바뀌며 근무시간이 들쭉날쭉한데, 단순 착각이나 실수로도 중죄를 저지른 것처럼 즉각적인 환수와 행정처분을 받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요양기관이 급여청구를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수년 뒤 공단에 의해 한꺼번에 적발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이런 경우 부정수급액이 누적돼 요양기관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의 환수조치를 받게 된다.

요양기관들은 “급여청구를 할 때 바뀐 법이나 규칙, 고시와 위배돼 잘못 청구되는 것이 있으면 미리 걸러낼 수 있도록 급여청구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라고 입을 모았다.

◇숨진 장기요양인 추모

장기요양인전국연대 추진위원회는 1월 31일 오후 2시 부산광역시청 광장에서 지난 12월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A센터장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제와 함께 장기요양기관 현지조사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정우정 위원장은 “이번 추모제를 기점으로 장기요양인들이 하나가 되어 공감대를 이어가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