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8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8] 400년 산송(山訟) 치른 윤관 장군 묘 “조선 최고 명문가들의 자존심 대결…영조가 해결에 나서기도”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8] 400년 산송(山訟) 치른 윤관 장군 묘 “조선 최고 명문가들의 자존심 대결…영조가 해결에 나서기도”

    윤관 묘 바로 뒤편 청송 심씨 가족묘… 윤씨 측, 심씨 조상에 절하는 셈청송 심씨, 파평 윤씨 측이 제공한 2500여 평에 가족묘 이전하기로 합의 [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로에 왕릉에 버금가는 거대한 묘역이 있다. 고려 예종 때 여진족을 혼내준 윤관(尹瓘) 장군(1040~1111년)의 묘지이다. 면적이 무려 1만6000여 ㎡로 5000여 평에 이른다. 박달산 자락에 위치한 묘 앞으로 수백 m 완만하게 펼쳐진 구릉, 그 끝에 흐르는 임진강, 묘 뒤로 울창한 소나무 숲 등이 풍수에 문외한인 이의 눈에도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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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11-21 15:00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7] 경기도 연천에 있는 기황후 묘지 터 “재궁‧석물 2기‧기와 조각…묘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7] 경기도 연천에 있는 기황후 묘지 터 “재궁‧석물 2기‧기와 조각…묘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

    고려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순황제 아들 낳고 제1 황후 돼명나라 주원장에 쫓겨 황제와 북쪽으로 도주…고려 입국설[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기황후(奇皇后·1315~1369년?)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삶을 살다 간 여인이다. 그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고, 그곳에서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다가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했고, 마지막에는 ‘행불자’ 신세가 됐다. 고려 공녀(貢女)인 그는 원나라 황제의 부인이 돼 중국과 고려 두 나라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중국에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으로 도주한 후로는 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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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11-14 15:05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6] 율곡 이이가 스님 된 사연 “모친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 삶과 죽음 의미 깨닫고자”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6] 율곡 이이가 스님 된 사연 “모친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 삶과 죽음 의미 깨닫고자”

    19세 가출, 금강산 마가연에 들어가 ‘석담’ 법명으로 용맹정진 선조에게 고하길 “나같이 불교에 깊이 중독된 사람 없을 것” [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년)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년)과 관련해 몇 가지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화폐에 나란히 초상을 올린 최초의 모자(母子)라는 점이다. 이이는 5000원권에, 신사임당은 5만 원권에 얼굴이 들어가 있다. 두 번째, 모자의 묘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율곡 선생 유적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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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11-09 06:38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5] 김부식과 삼국사기 “명산에 보관은 못하더라도 간장독 덮개로 쓰이지 말았으면”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5] 김부식과 삼국사기 “명산에 보관은 못하더라도 간장독 덮개로 쓰이지 말았으면”

    70 나이에 삼국사기 편찬…삼국의 역사‧인물 밝혀준 유일한 사서일식 등 천체 관측 기록 정확히 일치해… 일본은 반 이상 엉터리[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우리 선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이다. 먼저 신라·고구려·백제 등 삼국의 역사는 물론 그 이전의 역사까지를 기록한 최고(最古)이자 유일한 사서(史書)이다. 만약 이 책이 없었다면 삼국시대는 깜깜이였을뿐더러, 그 시대를 알려면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 왜곡한 중국·일본의 조작된 사서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모든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정확히 근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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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10-31 14:13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4] 조선의 혼군 인조(仁祖) “두 차례 호란을 자초해 나라를 파멸로…가족 살해 패륜도”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4] 조선의 혼군 인조(仁祖) “두 차례 호란을 자초해 나라를 파멸로…가족 살해 패륜도”

    한양 세 번 버리고 피난 간 왕… 이괄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 당시 손주들 유배 보내고 며느리에 사약… 아들 소현세자도 의문의 죽음[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조선의 혼군(昏君) 마지막 순서로 조선 제16대 왕 인조(1595~1649년)를 조명한다. 인조는 선조(조선 제14대 왕·1552~1608년)와 후궁 인빈 김씨의 5남인 정원군과 인헌왕후 구씨 사이에 태어나 인조반정(仁祖反正)을 통해 왕위에 올랐다. 인조반정은 이귀(李貴) 등 서인(西人) 일파가 1623년 4월 11일,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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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10-24 15:00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3] 조선의 혼군(昏君) ‘선조’ “백성보다 자기 안위부터 챙겨… 명나라로 망명하려”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3] 조선의 혼군(昏君) ‘선조’ “백성보다 자기 안위부터 챙겨… 명나라로 망명하려”

    임진왜란 때 환관들 데리고 한양 떠나…한강 건너자 배 침몰시켜 전쟁 공신 책봉 과정에도 문제 많아…이순신 미워하고 원균 우대[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宣祖·1552 ~1608년)는 조선 최초의 방계 출신으로 임금 자리에 올랐다. 왕위 계승은 적장자(嫡長子·정실부인이 낳은 적자 중에서 첫째 아들)라는 원칙을 깬 첫 번째 사례이다. 명종(明宗·조선 제13대 국왕·1534~1567년)은 인순왕후 심씨(1532~1575년) 사이에 하나뿐인 아들 순회세자를 두었으나 순회세자가 13세에 요절했다. 명종은 더 이상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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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10-02 21:31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2] 조선의 혼군(昏君) 광해군 “국정 운영 잘했으나 왕권 욕심에 패륜 저질러 몰락”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2] 조선의 혼군(昏君) 광해군 “국정 운영 잘했으나 왕권 욕심에 패륜 저질러 몰락”

    임진왜란 때 의병 모아 싸운 ‘젊은 왕자’… 백성에게 절대적 지지이복동생 영창대군과 계모 인목왕후 죽게 하고, 부정부패 일삼아[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조선 제15대 국왕 광해군(光海君·1575~1641년)은 용맹하고 영특했다. 임진왜란 때 그는 의병을 모아 왜병을 물리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宣祖·조선 제14대 국왕·1552~1608년)는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의주로 피신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있는 곳을 ‘대조’, 아들 광해군이 있는 곳을 ‘소조’로 칭하며 조정을 둘로 나누는 분조(分朝)를 행했다. 선조는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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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9-26 14:05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1] 조선의 혼군(昏君) 연산군 “증조할머니 머리로 들이받고, 아버지 후궁들, 이복동생들 사사”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1] 조선의 혼군(昏君) 연산군 “증조할머니 머리로 들이받고, 아버지 후궁들, 이복동생들 사사”

    친모가 사약 받고 죽은 사실 알고 복수 혈전… 240여 명 살해조선 역대 왕 중 최초 탄핵… 강화도에 유배돼 질병으로 사망[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혼군(昏君)이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말한다. 조선의 혼군은 연산군·광해군·선조·인조를 일컫는다. ‘인문학 여행’은 4회에 걸쳐 이들 4명의 임금을 차례로 소개한다. 첫 번째로 조선 제10대 국왕 연산군(燕山君·1476∼1506년)이다. 연산군을 거론할 때 증조할머니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1502년)에 대한 폐륜 행위를 빼놓을 수 없다.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 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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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9-19 10:31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0] 첫날밤 소박맞은 왕비 정성왕후 “영조에게 무시당한 채 53년 홀로 지내…자식도 없어”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20] 첫날밤 소박맞은 왕비 정성왕후 “영조에게 무시당한 채 53년 홀로 지내…자식도 없어”

    무수리 출신 어머니를 모욕했다고 여긴 영조, 회갑연도 못 치르게 해한중록 “죽기 직전 검은 피 한 가득 쏟아…가슴 속 울분 쏟아낸 듯”[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왕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왕비. 53년간 부부였지만 단 한 번도 남편이 찾지않아 빈방을 지켜야 했던 여인. 자식도 없고, 회갑연도 못 치르게 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남편에게 무시당한 비운의 왕비가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1693~1757년)이다. 정성왕후의 삶을 이처럼 초라하고 불행하게 만든 왕은 영조(英祖·조선 제21대 국왕·1694~1776년)이다. 정성왕후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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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9-12 15:20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9] 고려말 조선 초 최대 왕실 사찰 회암사지 “이성계가 머리 깎고 계(戒)를 받기도…화재로 터만 남아”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9] 고려말 조선 초 최대 왕실 사찰 회암사지 “이성계가 머리 깎고 계(戒)를 받기도…화재로 터만 남아”

    경기도 양주에 축구장 5배 면적, 70채 건물… 승려 3000여명청기와, 용‧봉황무늬 막새기와, 왕실 관요 도자기… 궁궐 수준[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경기도 양주(楊州)는 한양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이곳에 궁궐과 유사한 사찰이 있다. 회암사지(檜巖寺址)이다. 축구장 5배 크기(1만여 평)에 3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했던 이 사찰은 그러나 화재로 전소돼 현재는 볼 수 없다. 주춧돌, 돌계단, 석주, 당간 등에는 여전히 검게 그을린 자국만 남아 있다. 회암사지가 경복궁 같은 궁궐의 형태를 갖췄다는 증거는 많다. 궁궐에만 제한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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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9-05 14:49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8] 조선 최고 ‘장수 왕자’ 효령대군 “권력 포기 후 불교에 심취… 90세까지 행복한 삶”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8] 조선 최고 ‘장수 왕자’ 효령대군 “권력 포기 후 불교에 심취… 90세까지 행복한 삶”

    태종, 장남 폐위하고 둘째 효령 건너뛰고 삼남(세종)에 왕위 물려줘 “효령은 활도 잘 쏘고 책도 좋아하나 술 못 마셔 사신 접대에 문제”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술을 못 마셔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자”. 효령대군(孝寧大君·1396~1486년) 이야기다.조선 제3대 국왕 태종(太宗·1367~ 1422년)은 일찌감치 왕위 계승자로 장남인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년)을 점찍었다. 당시 양녕의 나이 10세, 활달하고 부모 말 잘 듣고 명석했다. 왕세자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16세 되던 해 연회에서 만난 한 기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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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8-29 14:53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7] 뼈아픈 역사 공간 덕수궁 “임금이 쫓겨나고, 국가 주권 빼앗겨… 공원으로 전락”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7] 뼈아픈 역사 공간 덕수궁 “임금이 쫓겨나고, 국가 주권 빼앗겨… 공원으로 전락”

    광해군이 무릎 꿇은 석어당, 을사늑약 체결된 중명전, 대한제국 황궁 석조전 등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월산대군 사저를 행궁으로 삼아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덕수궁(德壽宮)처럼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궁궐도 드물다. 순종이 아버지 고종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취지로 지은 이름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임금이 이곳에 살다 쫓겨나고, 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고, 나아가 나라의 주권마저 빼앗긴 곳이다. 덕수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가 2층 목조구조물 석어당(昔御堂)이다. ‘옛날(昔) 임금(御)이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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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8-22 13:40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6] 얼자 출신으로 정승 반열에 오른 유자광 “모함과 술수로 정적 제거하고 권력 차지… 모친에겐 효자(?)”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6] 얼자 출신으로 정승 반열에 오른 유자광 “모함과 술수로 정적 제거하고 권력 차지… 모친에겐 효자(?)”

    양반과 천민 사이에 태어나 과거 볼 자격도 없어…임금 총애로 출세무오사화 일으켜 김종직 부관참시 당하게 하고 연산군의 지지 얻기도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조선시대 얼자(孼子)는 과거를 볼 자격조차 없었다. 얼자는 양반과 천민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말한다. 서자(庶子)는 양반과 양인 첩 사이에 낳은 자식이며, 둘을 합쳐 서얼(庶孼)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홍길동이 얼자이다. 홍길동에 버금가는 얼자 출신이 또 있다. 두 번이나 1등 공신에 오르고, 군(君) 호칭을 받은 유자광(柳子光·1439~1512년)이다. 유자광은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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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8-18 15:17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5] 왕들의 유배지 ‘교동도’ “고려왕‧조선 왕족의 ‘지옥 감옥’…한양과 가까워 감시 쉬운 탓”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5] 왕들의 유배지 ‘교동도’ “고려왕‧조선 왕족의 ‘지옥 감옥’…한양과 가까워 감시 쉬운 탓”

    연산군은 집 밖에 못 나오게 가시울타리 쳐… 가장 가혹한 형벌 영창대군, 8세 때 유배 중 사망·안평대군도 가시울타리에 갇혀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강화도 바로 옆에 교동도(喬桐島)란 섬이 있다. 큰 오동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구 약 3000명, 면적 47㎢로 예성강·임진강·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교동현으로 불렸다가 조선 인조 때 교통도호부로 승격되면서 경기·황해·충청도를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1896년 교동군으로 되었다가 1914년 강화군에 편입돼 교동면으로 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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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8-08 14:10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4] 기생 홍랑의 ‘금지된 사랑’ “관기 금기 깨고 한 남자만 사랑… 그가 죽자 3년 시묘살이까지”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4] 기생 홍랑의 ‘금지된 사랑’ “관기 금기 깨고 한 남자만 사랑… 그가 죽자 3년 시묘살이까지”

    함경도 경성의 연회에서 만나 시를 매개로 서로에게 끌려기생으로서 유일하게 사대부 족보에 올라… 묘도 한 곳에[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조선시대 관기(官妓)가 사대부를 죽도록 사랑했다. 사대부가 죽자 무덤 곁에서 3년간 시묘살이했다. 둘의 애틋한 사랑에 감동받은 후손이 기생을 집안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선조의 묘 앞에 무덤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조선시대 기생으로 유일하게 사대부의 족보에까지 오른 이 사람의 이름은 홍랑(洪娘). 함경도 홍원 태생으로 출생과 사망 일자는 알 수 없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살다 함경도 경성(鏡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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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8-01 15:55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3] 농사꾼에서 왕이 된 철종 “직전 왕 후사 없자 궁궐 최고 어르신 순원왕후가 지목”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3] 농사꾼에서 왕이 된 철종 “직전 왕 후사 없자 궁궐 최고 어르신 순원왕후가 지목”

    사도세자의 서(婿) 손자 출신으로 강화에서 농사짓다 입궁안동 김씨 득세에 왕 노릇 제대로 못해…주색에 빠져 요절[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된 남자. 조선 제25대 왕 철종(1831~1864년)이다. 그는 사도세자의 3남인 은언군의 서(婿) 손자이다. 서자 출신이란 의미다. 본명은 이원범이다.이원범은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집안 대대로 역모에 휘말려 14세 때 강화도로 유배돼 농사를 지었다. 왕족 예우를 박탈당해 처지가 비참했다. 최양업(崔良業·1821~1861년)이라는 가톨릭 신부는 이원범이 친척 집에서 종노릇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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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7-25 15:29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2] 신라 경순왕 무덤이 왜 연천에 있을까? “경주에 봉분 쌓으면 신라 백성 들고 일어날까 두려워”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2] 신라 경순왕 무덤이 왜 연천에 있을까? “경주에 봉분 쌓으면 신라 백성 들고 일어날까 두려워”

    고려 왕건에 나라 송두리째 넘기고 고려 신하로 남아 천수(81세) 누려반대한 왕자, 금강산 들어가 삼베옷만 입어 ‘마의(麻衣)태자’ 별명 얻어[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역대 신라왕들의 무덤은 모두 경주에 있다. 그런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敬順王·제56대 국왕·897~978년)의 무덤은 왜 달랑 떨어져 나와 경기도 연천에 있을까. 그것은 경순왕이 신라의 왕이 아닌 일개 고려의 신하로 신분이 전락했기 때문이다.경순왕은 고려의 왕건(고려 태조·877~943년)과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6년) 간 영토 전쟁이 극심하던 후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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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7-18 16:01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1] ‘인왕산 치마바위’ 주인공 단경왕후 신씨 “10대에 만난 임금 그리며 50여 년 홀로 지낸 비운의 여인”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1] ‘인왕산 치마바위’ 주인공 단경왕후 신씨 “10대에 만난 임금 그리며 50여 년 홀로 지낸 비운의 여인”

    13세에 한 살 어린 중종과 결혼… 반정 세력에 쫓겨나궁궐 가까운 인왕산 바위에 치마 널어 애틋한 정 전해[백세시대=오현주 기자] 50년 넘게 과부 아닌 과부로 산 이가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1487~1558년)이다. 신씨는 ‘7일간 왕비’,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의 주인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선의 영특한 왕비 중 한 명’이란 평가를 받는 그가 어떻게 이처럼 기구한 삶을 살았을까. 신씨는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中宗·1488~1544년)의 첫 번째 부인으로 13세에 한 살 어린 중종(진성대군)과 결혼했다. 신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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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7-04 14:45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0] 이방원과 신덕왕후 “친(親) 모자지간보다 가깝던 둘 사이, 세자 책봉으로 갈라서”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10] 이방원과 신덕왕후 “친(親) 모자지간보다 가깝던 둘 사이, 세자 책봉으로 갈라서”

    이방원이 정몽주 살해한 것에 격분한 이성계, 아들에 칼 뽑아이성계 두 번째 부인 강씨가 몸으로 막아줘 간신히 목숨 구해[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이성계와 정몽주는 처음에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1392년 조선 개국 직전 고려는 두 세력의 싸움이 극에 달했다. 하나가 권문세족, 또 다른 하나가 신진사대부이다. 왕은 무기력했다. 권문세족은 기득권층으로 자신들이 누리던 정치권력과 경제적 부를 유지하려 했다. 신진사대부는 공민왕의 신뢰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 나가는 신흥 세력으로 권문세족의 반대편에 섰다.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들이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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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6-27 14:38
  •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09] 진포대첩을 아시나요 “조선 수군 전술 모델 된 해전… 이순신도 활용”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109] 진포대첩을 아시나요 “조선 수군 전술 모델 된 해전… 이순신도 활용”

    1380년 고려 우왕 때 왜선 500척 화포로 격침 시켜최무선, 화약 대량 생산 개발… 처음 배에 화포 실어[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세계 해전(海戰) 사상 처음으로 대포를 배에 실어 화포를 발사한 전투이자 조선 수군의 전술 모델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 해전의 전술을 활용해 왜선 함대를 무찔렀으며,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어떤 해전일까. 바로 고려가 금강 하구에서 왜구를 상대로 크게 승리한 ‘진포대첩’(鎭浦大捷)을 말한다. 진포의 정확한 지점에 대해선 이견이 분분하다. 지금의 금강 하구로 군산과 익산 등 두 도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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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 기자
    06-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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